[두니아 너머] 동남아시아 여성도 여성운동을 하나요?
글 조고은(번역가, 번역행정사)
베트남의 나이키 신발 공장에서는 베트남 여성들이, 인도네시아의 팜유농장에서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홍콩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부엌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1) 아시아, 2)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을 전담하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그 비판을 만나는 경로가 주로 국내 혹은 영미권 언론인 터라 그들이 겪는 부당한 일은 잘 알면서도 정작 그 상황에 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이나 활동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부지불식간에, 그들은 그저 부당한 일을 당할 뿐 그것을 비판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들이 겪는 착취에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은 우리, 즉 한국 혹은 영미권의 사람들이라는 구도를 만들게 된다.
아시아의 여성들은 차별과 착취를 당하면서도 그것이 부당한 줄도 모른 채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며 지낼 것이라는 인식은 인종차별이자 여성혐오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인데, 다른 아시아 여성을 대할 때에는 한국의 여성들도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차별적 시선이 ‘아시아의 여성은 구시대적일(=미개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골자로 하고 있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서구적이며 현대적인(=계몽된) 위치에 서게 되기에 ‘우리’의 오리엔탈리즘적 차별 의식은 두 가지 방향으로 구체화된다. 첫째, ‘동시대 다른 아시아의 여성들은 미개할 것이다’, 둘째, ‘과거 한국의 여성들은 미개할 것이다.’
우리처럼 싸우는 여성은 어디든 있어왔다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접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다. 조금 품을 들이면 조선시대 여성들이 가부장적 시집살이를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는지, 식민지 시대 여성들이 독서모임과 독립운동의 와중에 여성해방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외쳤는지, 그리고 해방 후 신분 및 계급 차별을 철폐한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신분제와 축첩제를 없앤 평등한 가족제도를 요구하던 여성들이 거리를 얼마나 가득 메웠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흥미진진한 사실을 우리가 꼭 ‘따로 품을 들여야만’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소수자의 역사는 금세 은폐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군 진보의 성과는 기록과 평가의 과정에서 개혁적인 남성 지도자나 선진적인 미국 선교사 및 미군정의 업적, 즉 남성 기득권의 성과로 편입되어버린다.
인도네시아의 싸우는 이부(Ibu)들
인도네시아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1967년부터 32년간 독재를 지속하던 수하르토 정부를 무너뜨린 19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은 그저 아시아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로부터 촉발된 대규모 대중시위의 결과물로만 기록되고 분석되어 왔다. 그러나 당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는 수아라 이부 쁘둘리(Suara Ibu Peduli, 이하 ‘SIP’, 걱정하는 어머니 목소리)라는 여성운동이 있었다.
수하르토 정부 반대운동에 여성들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동안 수하르토 정부는 ‘온화한 어머니’를 모델로 내세우며 국민들을 체제에 순응시키려는 통치전략을 꾸준히 사용해 왔고, 반대로 국가를 위협하는 집단으로서 공산주의자들을 악마화하는 데에도 건국 영웅을 잔인하게 살해한 여성 공산주의자의 이미지를 퍼뜨려왔다. 저임금 노동착취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로 국민 생활이 극도로 빈곤해지면서는 어린 아이들이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해 가장 먼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이렇게 지배전략으로서의 여성혐오와 고도의 노동 착취, 그리고 극심한 빈곤이 교차하는 한복판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던 SIP의 페미니스트들은 1998년 2월 삼엄한 군사보안령에도 아랑곳없이 “우유값을 내려라(Down SuSu)”를 외치는 시위를 시작한다. 이 구호는 우유(Susu)와 동시에 수하르토(Su) 정권을 중의적으로 의미하도록 교묘하게 설정된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온화한 어머니’들이 아이를 걱정하는 운동으로 탄압의 명분을 차단하면서도 심층적으로는 정권 타도를 바라던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이 전국민적으로 확대된 이후에도 SIP은 ‘우유값을 내려라’ 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후원금을 바탕으로 공공부엌을 조성해 시위대를 지원하는 한편, 그 부엌에 모인 시민들이 그곳을 공론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여 담론적·조직적 구심점이 되도록 했다. 이렇게 독재 정권의 국가폭력, 경제 불평등, 여성혐오에 저항하던 SIP의 민주화 운동은 시간이 흐르자 민주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등장한, 그저 쪼들리는 가계를 걱정한 여성들의 빈곤운동이라는 평가로 축소된다. 이는 독립운동, 건국운동, 1980년대 노동운동 및 1987년 민주화운동에서 한국의 여성운동의 의의가 부차적인 것으로 축소되어왔던 과정과도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페미니스트야말로 수하르토 독재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가장 첨예하고 느끼며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사람들이다.
싸우는 여성을 찾아내는 여성들
그저 착취를 당하기만 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아시아 여성들의 활약상을 찾다 보면, 아시아 여성이 오래 전부터 꾸준히 치열하게 싸워왔음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여성들 역시 오래 전부터 있어왔음을 알게 된다. 결국 여성의 역사가 묻혀있었다는 것은 곧 여성의 역사를 취재하고 연구하는 여성들도 묻혀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대체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무시와 차별이 여태껏 만연해 있는가에 대한 분노가 ‘이전 세대 여성들은 이런 상황을 그저 수수방관했던 것인가’와 같은 원망이나 연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수자의 운동이란 기념비적 승리와 주류의 거센 반동을 오가며 이루어지며, 그 이보 전진 일보 후퇴의 궤적은 끊임없이 그 주류에 의해 지워지기를 거듭한다. 남성중심적 제국주의는 아시아 여성의 노동력이나 섹슈얼리티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여성에 대한 기록과 역사,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착취해온 것이다.
여성운동이 남성중심 사회로 인해 말소당한 여성의 역량과 가치를 되찾아오는 운동이라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서로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와 더불어 ‘아시아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웃 나라 여성들의 역사를 찾아보고, 지금의 우리처럼 주변 여성의 소식을 찾아보려 했던 다른 여성들을 만나는 일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아시아 페미니스트와 함께 그리고 《두니아》와 함께.
나는 2018년에 여성학자 최형미 선생님의 〈아시아 페미니즘〉 강의를 처음 듣고, 막연하고 생소했던 아시아 여성들과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듯 느꼈던 경험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유럽, 일본 등 여러 국가가 급속도로 극우화되는 상황에서, 아시아에 관한 지속적이고 분석적인 보도를 통해 한국과 아시아에 입체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독립언론 《두니아》를 만난 것 또한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세 편에 걸쳐 아시아의 싸우는 여성들, 그리고 먼저 그들을 찾아보았던 여성들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최형미(2018), 「인도네시아 어머니 운동, ‘수아라 이부 쁘둘리(Suara Ibu Peduli)’에 나타난 교차성의 정치학에 관한 연구」, 『여성학논집』 제35집 1호, pp.129~161.
조고은: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서적을 꾸준히 번역해왔다. 현재는 번역행정사로도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