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너머] 미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활동하는 인도 페미니스트도 있나요?

[두니아 너머] 미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활동하는 인도 페미니스트도 있나요?

조고은(번역가, 번역행정사)

여성이 겪는 차별은 결코 남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은 기업의 노동착취나 자연에 대한 착취 또한 여성으로서 경험하고 여성으로서 저항한다. 특히 아시아는 국내의 차별이나 착취의 문제뿐 아니라 서구의 초국적 자본에 의한 착취가 한 겹 더 존재한다. 아시아의 여성은 자국 남성과 함께 외국 기업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외국 기업은 자국 정부나 남성들과 결탁하여 여성을 착취하기도 한다. 따라서 아시아의 여성은 자신이 겪는 차별을 단순히 남녀의 문제로만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착취를 당하는 쪽은 어떨까? 서구 제국주의는 아시아의 여성뿐 아니라 그곳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총체적으로 착취해 왔다. 그리하여 “지배 대 피지배”의 구도에서 피지배에 놓이는 여성, 자연, 자국의 전통문화는 한데 묶이는 경우가 많았다. 제3세계 남성이 근대적 산업 개발을 상징한다면 여성은 자연이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시아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주체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비슷한 위치에서 서구 남성 자본에 착취당하는 자연 환경의 문제에 연대하여 개발과 성장을 의심의 여지없는 절대적 가치로 추구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인도 히말라야 지역 여성들의 벌목 저지 운동

1970년대 인도 히말라야에서 벌어진 칩꼬 운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히말라야의 삼림은 대의를 위해 빠르게 밀어버려야 할 잡초이거나 이윤을 위해 마음껏 가져다써도 되는 화수분 취급을 받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이던 인도의 중앙 정부는 히말라야 삼림에 지뢰 등 군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대규모 벌목에 돌입했다. 더불어 해외 자본의 투자를 받아 테니스 라켓 등을 제조하던 기업 역시 귀한 물푸레나무와 호두나무를 무서운 기세로 벌목하기 시작했다. 이때 히말라야의 중심인 가르왈 지역에 살던 여성들이 숲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저항에 나섰다. 그들이 나무를 껴안고 벌목꾼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버티며 나무를 지킨 것이다. “껴안다”는 뜻의 힌디어인 “칩꼬चिपको” 운동은 결국 벌목회사를 철수시키고 숲이 재생될 수 있는 정도에 한해서만 벌목이 이루어질 수 있게 제한하는 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인도 환경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또한 인도 여성에 의한 페미니즘 운동이기도 하다. 칩꼬 운동의 과정에서 여성들이 국가의 폭력이나 자본의 착취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이라고 해서 오직 여성으로만 세상과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여성은 자연을 접하는 인간으로서, 임금노동을 하는 노동자로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받는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동시에, 그 모든 관계를 여성이라는 고유한 상태로 겪는다. 따라서 가르왈의 여성들이 정부와 기업의 무차 별 벌목에 저항할 때에는 당연하게도 숲에 의지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히말라야 주민으로서, 그리고 국경 분쟁의 피해를 겪는 인도의 국민으로서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동시에 인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사와 육아, 저소득의 채집‧경작으로 사회적 지위가 제한되어 있는 여성으로서 만들어진 시각을 통해 모순을 인식한다. 실제로 인도 정부는 마을의 촌장을 비롯한 남성을 내세워 칩꼬 운동 중인 여성들을 회유하려 했다. 삶의 터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이해관계나 문제의식도 상통할 뿐 아니라, 남편이 설득하면 여성들이 물러설 것으로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 남성들과 대립하며 벌목의 중단을 요구했고 결국 고산 지대 벌목을 공식적으로 금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인도 천민 계급 여성들의 에그로 페미니즘

인도 여성 중 불가촉천민 계급인 달리트(dalit, ‘짓밟힌 자’라는 의미) 여성들의 페미니즘 운동도 식민지시대인 194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달리트 여성은 낮은 신분을 빌미로 한 극도의 저임금 노동, 일상적 성폭력, 물리적 격리에 따른 소외 등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겪어왔기에 페미니즘 운동 역시 노동권, 주거권, 성적 자기결정권 등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달리트 여성의 대다수가 종사하고 있는 농업노동을 중심으로 한 에그로 페미니즘 (Agro Feminism)는 여성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여 가부장적 계급사회인 인도를 비판하고 달리트 여성 해방의 단초를 찾으려고 한 운동이다. 달리트 여성에게 맡겨진 농업노동은 초저임금 노동이라는 점에서 계급적‧성차별적 착취인 한편, 글로벌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용수 오염 등을 불사하고 전 세계에 팔려갈 농작물을 재배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시아에 대한 자연 착취이다. 그리하여 에그로 페미니즘은 농업 노동자인 달리트 여성이 농지를 소유하고 여성들 자신과 어린이들을 위한 친환경적 농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야 긴급하게 생계와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달리트 여성과 급속도로 생명력이 고갈되고 있는 인도의 농토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가부장제에 맞서는 인도 여성들

핵물리학을 전공한 인도 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는 칩꼬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에코 페미니즘을 주창한다. 그는 1)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근대의 인간중심적 개발주의가 자연을 그저 필요에 따라 이용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고,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당장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차별하게 자연을 착취하는 구조와 2) 근대의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을 주변적 대상으로 보고 그들의 노동력을 비롯한 여러 가치를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는 구조가 논리적으로 상통한다고 보았다. 즉, 정치적‧경제적 구도에서 여성과 자연은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대상의 지위에 놓인다는 점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다. 특히나 서구 자본이 아시아의 여성과 자연을 고도로 착취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 여성과 자연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에그로 페미니즘을 주창한 인도 페미니스트 베다나야기 역시 농업이라는 같은 영역에서 동시에 착취당하고 있는 자연과 달리트 여성이 친환경적 자급 농업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공고히 해야 인도의 가부장적 계급 사회와 초국적 자본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인도의 여성운동은 아시아의 여성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얼마나 복잡한 차별 속에 놓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여성운동이 단지 현재 남성이 가진 권력을 여성도 똑같이 가지게 되는 것, 혹은 현재 서구의 여성들이 이룬 성취를 아시아 여성들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남성적 지배 구조로 인해 배제되어 온 다양한 존재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착취 논리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여성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개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사회 질서를 모색하는 인도의 페미니즘이다.

출처: Google Creative Commons

참고문헌

최형미, 「인도 달리트 여성운동 안에 나타난 교차성의 정치학: 텐드랄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젠더와 문화』 제15권 2호, 2022. pp. 293~327.

EBS, 《위대한 수업》 “반다나 시바 – 식량 주권 선언 4강 에코 페미니즘”, 2023. 2. 26.

조고은: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서적을 꾸준히 번역해왔다. 현재는 번역행정사로도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