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북클럽] 정문태 『위험한 프레임』 서평: 프레임의 위험성과 가능성
글 조고은(번역가, 번역행정사)
2026년 2월 24일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두니아 북클럽〉 첫 모임이 있었다. 언론 혹은 아시아에 관한 연구나 일을 하는 사람, 혹은 아시아에 대한 정보 부족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열한 명이 모인 자리였다. 우리는 정문태 기자의 『위험한 프레임』(2017)을 함께 읽으며 아시아를 대하는 언론의 기본적 태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위험한 프레임』은 20년 이상 국제뉴스를 담당해 온 정문태 기자가 외신기자로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겨레〉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한국 언론이 국제뉴스 보도를 통해 어떻게 보수 정권을 비호하고 미국과 공모하며 아시아를 대상화하는지를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 중 특히 아시아 관련 국제뉴스 분야에서 한국 언론의 문제적 특징은 다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외신 보도를 받아쓰는 데 그친다. ▲ 미국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 아시아 뉴스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배제하거나 대상화한다. ▲ 한국이 서구 사회에 인정받은 사례만을 발전이자 성과로서 찬양한다. 따라서 작가의 문제제기는 이런 예시 질문으로 드러난다.
- “아세안정상회의” 등 중요한 아시아 국제행사를 한국 언론은 전혀 취재하지 않는 것이 정당한가?
- 정부가 벌인 외교문제, 대북문제 등을 정확히 취재하지 않고 사건을 은폐하거나 잘못 보도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정당한가?
- 정말로 IS는 테러리스트, 미국은 정의의 사도인가?
- 정말로 한국인이 노벨상을 탄 것이 전 국가적 경사인가?
정문태 기자는 한국 언론의 이러한 문제를 ‘위험한 프레임’이라고 명명하고, 다양한 국제적 사건을 사례로 들며 이 사건을 보도하거나 무시하는 한국 언론에 어떠한 가치판단이나 입장이 내재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프레임은 문제가 아니라 돌파구다
위 1~4번 문제의 원인은 취재 자원이 제한적인 언론 여건일 수도, 아시아에 관심 없는 독자대중일 수도, 해방 이후 우방과 적국을 나누어 인식하던 해묵은 관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인 분석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허망하다. 특히나 공정성.객관성.중립성이 언론이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표방되는 한, 언론은 자신이 고유의 관점을 가지고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논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게 된다. 사실 근대 사회에서 이런 태도는 비단 언론뿐 아니라 과학자, 교육자, 법관, 행정가 등 사회제도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집단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정확하게’ 현상을 관찰하여 ‘객관적인’ 법칙을 도출하거나, ‘사심 없이’ 정해진 규칙을 이행하는 겸손한 목격자이자 선한 관리자임을 표방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거의 모든 비판이론들이 근대의 주류 기득권이 사회를 통치하는 방법이 바로 이렇게 그들 자신을 위한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세계 본연, 혹은 인간 본연의 원리로 은폐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언론을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프레임’이라는 단어 역시 이렇게 언론 보도 속에 은폐되어 있는 편향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령 미국의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침공을 보도할 때, 정치적으로 막강하며, 역사적으로 밀접하고 언어적으로 친숙하며 언론 제도적으로도 의존하고 있는 영미권 외신을 주로 인용하면서 전쟁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미국의 입장에서 이란을 침공의 대상으로 보는 구도가 한국의 뉴스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의 맥락은 미국에 입장에서 왜 이러한 침공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지의 사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제시되며, 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한 폭력을 가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진영, 침공을 당한 이란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테러 진영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로서 통용된다.
하지만 프레임은 없애야 할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돌파구이다. 편향된 프레임을 감추고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 양 호도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 해결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정한 객관성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프레임에 입각하여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자각하고 그것이 보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기존 프레임을 비판적으로 개선하거나 다른 새로운 프레임을 접하고 그것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독자의 수요를 예측하는 언론의 판단은 중립적인가?
가령 아시아 뉴스는 독자들의 수요가 없기 때문에 보도하기 어렵다는 말은 어떨까? 이는 언론이 독자 대중의 무관심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처지에 자신을 두고 있지만, 이 말을 통해 언론은 1) 독자 대중의 수요를 판단하는 행위 2) 아시아 뉴스를 배제하는 행위를 능동적으로 수행한 행위자라는 사실이 은폐된다. 순식간에 하나의 기사가 온갖 형태로 가공되어 온갖 플랫폼에 공유될 수 있는 현 시대에 ‘아시아 기사에 대한 수요’를 예측하기란 과거보다 훨씬 어렵다. 이렇게 독자의 관심이 고도로 유동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근거로 ‘사람들은 아시아 기사에 관심 없다’는 말을 객관적 실체로 지정하는 것일까? 사실 이는 ‘아시아 기사에 관심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편향적 통념에 동조하는 것에 가깝다. 이렇게 언론이 자신을 ‘아시아에 관심 없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 입장이 아니라 ‘아시아에 관심 없다는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보도를 수행하는 행위자임을 먼저 자각해야만, 언론이 그 프레임에 변화를 가하는 행위 또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다.
은폐된 프레임이 음모론을 만든다
프레임을 은폐하고 피상적인 객관성과 중립성을 표방하는 언론은 음모론의 온상이기도 하다. 정문태 기자는 음모론이 정보를 독점하여 베트남 전쟁을 억지로 정당화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던 언론에 맞서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일종의 저항인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미디어를 거점으로 극우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대에는 그저 언론 보도를 믿기 싫어서 음모론을 수용하는 경우도 많은 듯하지만, 여전히 음모론의 존립근거는 ‘언론이 편향된 관점으로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는 전제다. 언론이 스스로의 프레임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과 변화의 주체로 나서지 않는 한, 언론은 계속 음모론의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두니아〉의 이슬기 기자는 『위험한 프레임』을 같이 읽기로 한 이유가 정문태 기자의 협소한 한국 언론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지, 특히나 아시아 현장을 취재하지 않거나 파편적으로만 취재하는 한국 언론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두니아〉와 잘 통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독립된 언론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세상을 보는 고유의 프레임(들)을 만들겠다는 도전이다. 이 프레임은 창간 전부터 가지고 있기도 하고, 취재.보도하고 외부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져 가기도 한다. 〈두니아〉의 필자와 독자가 그저 주류 언론의 프레임을 비판하는 입장에만 서는 것이 아니라, 〈두니아〉의 기사는 어떤 주체에 동일시하여 사건을 바라보며 어떤 상대를 대상으로 인식하는지, 어떤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고 무엇을 부차시하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 책이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조고은: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서적을 꾸준히 번역해왔다. 현재는 번역행정사로도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