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북클럽] 박소현 『다양한 문화의 끝판왕 동남아시아』 서평: 동남아시아를 배우며 새로워지는 바깥 세상과 안쪽 세상

[두니아 북클럽] 박소현 『다양한 문화의 끝판왕 동남아시아』 서평: 동남아시아를 배우며 새로워지는 바깥 세상과 안쪽 세상

조고은 (번역가 , 번역행정사)

100 페이지 그림책으로 동남아시아 10 개국을 소개한다고요?

박소현의 『다양한 문화의 끝판왕 동남아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 즉 아세안 (ASEAN)의 회원국인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를 간략히 소개하는 어린이용 사회 교재이다. (현재는 동티모르도 아세안 회원국이나 이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아직 회원국이 아니었다고 한다.) 100 쪽 남짓의 얇은 그림책에 동남아시아 10 개국을 소개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치열한 자리싸움이 예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설명하자면 수 천 장이 넘을 방대한 정보 중 과연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어야 할까? 어렵게 고른 정보에 짧게라도 작가의 해석을 붙일 여유가 있을까 ? 알아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다뤄야 할까?

이 무시무시한 과업을 동남아시아 역사 연구자인 박소현은 매끄럽게 해낸다. 이 책은 각 나라의 언어, 문자, 인구, 평균수명, 소득 등 기본적인 정보와 대표적인 사진을 보여주는 데에서 시작해서 역사, 종교, 지리 및 기후적 특징을 바탕으로 각 나라를 간략하지만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린이용 교재인 만큼 쉬운 말로 써 있지만 , 읽다보면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감이 상당하다. 이른바 ‘가성비가 높은 독서’인 셈이다. 열 개의 나라가 차츰 익숙해질수록 ‘상식인이라면 여기 있는 내용 정도는 다 알고 있어야겠지’ 하는 욕심이 생겨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암기하듯 책을 읽었다.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동남아시아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동남아시아를 다루는 관점이다. 이 책에서 동남아시아는 흥미진진한 역사와 유망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앙코르와트의 위용이 증명하듯 600 년간 동남아시아를 지배한 강국이었던 캄보디아나 동남아시아 무역의 중심이자 유럽에 향신료를 공급하는 교역 라인의 요충지였던 말레이시아, 천 년 전부터 종주국인 인도보다 찬란한 불교문화를 발전시킨 미얀마 등 그들은 강건한 국가와 세련된 문화를 구축해왔고, 국제적 활동 범위도 아주 넓고 역동적이었다. 더불어 현재의 동남아시아는 자체적 인구와 자원을 바탕으로 내수시장의 규모가 건실한 것과 동시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매우 높고 무엇보다 30대 이하 청년의 인구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데다 해외 투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매우 높은 지역이라고 한다. 이렇게 역사적 깊이와 현재적 활력을 동시에 갖춘 동남아시아를 알아갈수록 점점 더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목이 ‘다양한 문화의 끝판왕’인 만큼 각 나라가 가진 고유한 특성도 다채롭게 소개된다. 브루나이는 왕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왕정체제이면서도 자원이 풍부하여 세금을 전혀 걷지 않는 국가이고, 태국은 국민적으로 왕족을 사랑하는 동시에 반군부 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한 입 헌군주제 국가이며,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경제를 개방한 경우도 싱가포르처럼 금융자본주의의 첨단인 동시에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권위주의 국가인 경우도 있다. 정치뿐 아니라 종교와 기후도 다양하다. 교역이 활발하여 타국의 상인이 동남아시아 곳곳에 머무르는 일이 많다보니 다양한 종교가 뿌리내렸고,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대륙부와 태평양의 섬으로 이루어진 해양부에 따라 지형과 기후가 달라 더욱 복합적인 특성의 사회가 구성되었다.

당연하던 세계관에서 더 나아가기

이렇게 왁자지껄한 동남아시아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서구의 관점으로 재단된 동남아시아만 알고 있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것이 서구의 관점인지도 모른 채 동남아시아에 대해 단편적 지식 몇 가지만 알고 있던 나는 그곳의 모든 현상을 단순히 식민지배의 결과물로 해석할 뿐이었다. 유럽 제국의 식민지배와 이후 서구 자본의 개입으로 왜곡된 정치, 플랜테이션 농업과 노동집약적 하청공장으로 단순화된 산업 구조, 모국어가 무엇이든 유럽어를 공용어처럼 쓰는 문화 등… 요컨대 내 머릿속의 세계지도에서 동남아시아는 식민지로서 태어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16 세기의 침략을 통해 비로소 아시아를 식민지로서 ‘발견’ 하게 된 유럽 제국의 시각이다. 그들은 ‘계몽 ’이나 ‘개화 ’라는 이름으로 서구 제도를 전면적으로 아시아 사회에 이식하고서야 그곳이 국가로 성립했다고 보았다. 유럽 제국이 아시아를 ‘근대화’ 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주입한 것 중 하나가 서구식 가부장제와 남녀 성역할이다. 그들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교양이 없거나 가난하고 무능한 현상으로 보고,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폐쇄적인 가족제도와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성역할을 세련된 사회질서로서 강제하고자 했다. 서구 페미니즘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가 핵심 의제였던 이유도 서구 여성들에겐 고정된 성역할을 타파하는 것이 너무나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에는 혈통, 가문에 집착하지 않아
이름에 성이 없는 경우도 많고, 여성은 오래전부터 정치, 산업, 군사 등 각종 분야에서 자유롭게 활동해왔다.

오늘날 ‘다양성’ 이 그토록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념이 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이 현실적으로 다양한 출신과 인종의 사람들이 이민해 와서 살아가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유럽 기원의 백인들만 진짜 미국인이라고 구획하는 차별적 사회 구조 때문에 비백인들에게 그토록 다양성이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애초에 각 나라가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에 익숙하고, 그렇게 서로 다른 문화끼리 교류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던 동남아시아를 이제 와서 ‘다양성 ’이 높은 사회라고 칭송하는 것은 다분히 미국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기준에 따른 평가이다.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사회와 역사의 기초를 잡아주는 이 책을 통해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외로 동남아시아가 여성지수와 다양성지수가 높은 국가로군 ”이 아니라, “성역할을 강요하거나 단일 인종만을 인정하는 사회제도가 의외로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것이 아니군”이다. 즉, 서구 근대제도가 설정한 체계에 따라 동남아시아를 폄하하거나 존중하기보다는 인간에겐 그것과 다른 제도와 사회도 있을 수 있음을 배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문화의 끝판왕 동남아시아』는 말미에 동남아시아와 한국이 교류한 역사를 통해 서로의 연결감을 강조하며 소개를 마무리한다. 특히나 현재의 동남아시아는 우리와 교류가 깊은 외국일 뿐 아니라 인구 비율은 물론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미 한국을 구성하고 있는 내부 구성요소이기도 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남아시아를 알아간다는 것은 한국의 ‘외부’ 에 대한 세계관을 넓히는 계기인 동시에 ‘내부 ’를 다시 구성하는 거점이 되어줄 것이다.


조고은: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서적을 꾸준히 번역해왔다. 현재는 번역행정사로도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