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시아 대홍수, ‘국가 시스템’이라는 제방은 왜 무너졌나

2025 아시아 대홍수, ‘국가 시스템’이라는 제방은 왜 무너졌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홍수. 출처: 구글크리에이티브커먼즈

2025년 말, 아시아의 지도는 국경선이 아닌 '물줄기'에 의해 다시 그려지고 있다. 태국의 상업 요충지부터 스리랑카의 고산 지대 홍차농장까지, 아시아 전역을 덮친 기록적인 홍수는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각국 정부의 기후 위기 대처 능력을 시험하는 가혹한 척도가 되고 있다.

두니아는 이번 홍수 사태를 통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4개국이 직면한 신뢰의 붕괴, 생태적 폭력, 적응의 한계, 그리고 사회적 회복력의 현장을 추적했다.

1. 태국 핫야이: '녹색 깃발'이 부른 행정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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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남부의 상업 허브 핫야이(Hat Yai)를 삼킨 것은 물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행정 설계의 붕괴'였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무분별한 도시 확장으로 하천 배수 기능이 마비되었다고 경고해 왔으나, 성장에 가려진 경고는 묵살되었다.

비극을 키운 결정타는 ‘정보의 오류’였다. 태국 당국은 안전을 뜻하는 ‘녹색 깃발’을 유지하며 “통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시장의 공언을 믿고 대피하지 않은 시민들은 3m 높이의 수마가 도시를 덮쳤을 때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사건은 재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인프라가 아닌 ‘공적 신뢰’임을 보여준다. 정부가 재난을 해결해야 할 위기가 아닌 '관리해야 할 홍보물'로 취급할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의 생계 파탄으로 돌아왔다.

2.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기후 재난으로 위장된 '생태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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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서수마트라와 아체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는 단순한 폭우의 결과가 아니다. 거리로 밀려 내려온 것은 진흙만이 아니었다. 벌목된 거대 목재들이 흉기가 되어 도심을 강타했다.

이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팜유 농장과 광산 개발을 위해 1분마다 축구장 6개 넓이의 숲이 사라지면서 토양의 보수 능력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당국은 이를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 주장하지만, 거리의 통나무들은 이 사태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생태적 폭력'임을 증명하고 있다.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는 동안, 산 아랫마을 주민들의 안전 지수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3. 말레이시아 페를리스: 기술적 준비를 앞지르는 '적응의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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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비 태세를 갖춘 국가다. 국가재난관리기구(NADMA)의 신속한 전개와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니 쓰나미'급 홍수는 기존의 모든 예측 모델을 비웃듯 발생했다.

문제는 ‘적응의 격차’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세운 방벽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태국으로부터 유입된 지하수 범람과 폭발적인 강우량은 첨단 경보 시스템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고도로 설계된 '종이 위의 계획'이 진흙탕 속에서 생활하는 농민들의 '현실적 고통'을 구제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프라 중심의 대책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시사한다.

4. 스리랑카: 국가 부도를 이겨낸 '사회적 자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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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론 ‘디트와(Ditwa)’가 강타한 스리랑카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모델을 제시했다. 강우량이 아마존 강 유량을 압도할 정도의 극한 재난 속에서, 시스템의 공백을 메운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Dana)’였다.

정부가 호소하기 전 이미 2만 팩 이상의 헌혈이 이뤄졌고, 이웃을 위한 공동 주방이 전국에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숙적 관계마저 재난 구호 앞에서는 영공을 개방하며 협력했다. 물리적 인프라는 붕괴했으나 사회적 인프라, 즉 '공동체 정신'이 국가를 지탱한 사례다.

두 개의 제방을 쌓아야 할 때

2025 아시아 대홍수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재난 관리에는 두 종류의 제방이 필요하다. 하나는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물리적 제방이며, 다른 하나는 신뢰와 소통, 공동체 의식으로 만든 보이지 않는 제방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보았듯, 보이지 않는 제방이 먼저 무너진 곳에서 물리적 제방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기후 변동성이 일상이 된 시대, 아시아 각국 정부가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단순한 배수관 증설이 아니라, 시민과의 투명한 소통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다.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