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너머] 천쓰홍 소설 『귀신들의 땅』 리뷰: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는 누가 해야 할까

[두니아 너머] 천쓰홍 소설 『귀신들의 땅』 리뷰: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는 누가 해야 할까

글 조고은(번역가, 번역행정사)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꺼낼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발언권’이란 말 그대로 기회이자 힘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회고하고 말하는 과정이 그저 한없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오직 자기 외에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줄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게다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 한 명밖에 없을 것만 같다면 더더욱 외로운 일이다. 그럴 때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동료에게 의지할 수 있다면 한결 시름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완의 게이 작가 천쓰홍의 자전적 소설 『귀신들의 땅』(2023)은 반공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던 1980년대의 시골 마을 용징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모두 어른이 되어 흩어져 지내다 오랜만에 다시 고향에서 재회하는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이다. 화자인 ‘천톈홍’은 다섯 명의 누나와 그 뒤에 태어난 형을 둔 막내로, 장손만을 중시하는 친할머니와 유약한 아버지, 드센 어머니의 돌봄 속에서 자란다.


어려서부터 게이임을 자각했던 톈홍은 집과 학교, 마을에서 모두 동성애 혐오폭력을 당한다. 집안의 극심한 남아 선호와 마을과 학교에 만연한 성차별과 권위주의, 국가의 삼엄한 반공 정책 등 다양한 권력 관계가 뒤얽힌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는 여성차별과 묶여서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공산당 색출의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톈홍은 남자인 형이 아니라 여자인 누나들과 함께 골방에 처박혀 할머니의 구박을 받기도 하고, 학교에서 남자 동급생과의 행실이 불량하다며 교사에게 맞기도 하며, 그가 좋아하던 동네 형을 엄마가 빨갱이로 신고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집과 학교에서 내쫓기고 마을과 국가에서 소외되어 머나먼 독일로 떠나지만, 그곳에서조차 인종차별을 당하다 형체가 없는 귀신이 된 듯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당한 일은 가족 모두가 몸담았던 가부장적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간략하게 서술될 뿐 그는 어디까지나 소수자 동료의 입장에서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별을 받아온 누나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에게는 현모양처 외에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누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애를 쓴다. 손끝이 야문 큰 누나 수메이는 일찍부터 재봉공장에서 돈을 벌고, 책을 많이 읽던 둘째 누나 수리는 공무원이 되며, 유능한 셋째 누나 수칭은 일류 대학에 진학하여 유명 앵커와 결혼한다. 전략적으로 부자와 결혼해서 살길을 모색하는 넷째 누나 쑤제도 있다.


하지만 톈홍이 독일에서 귀국할 무렵 중년의 누나들도 모두 삶에서 좌절한 상태이다. 일류대를 우수하게 졸업한 셋째 수칭에게조차 타이완의 가부장제,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는 개인의 힘으로 돌파하기에 너무 견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편의 사업 실패, 방종한 생활, 폭력을 겪으면서도 좀처럼 이혼을 결단하지 못한다. 남성중심적 사회는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고 결혼으로 몰아세워 집안에 가둔 뒤 그 동안 그들이 독립할 만한 경제력을 갖출 기회를 박탈한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경제적 무력감 속에서, 그들은 남편과 사회에 분노하면서도 어떻게든 가정 내에서 버텨보려 애쓰고 있다.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의욕을 안고 흩어졌던 남매들이 텅 빈 상태로 고향에서 재회할 때, 톈홍은 이 마을이 ‘귀신들의 땅’이라고 느낀다. 용징은 여전히 구시대의 귀신에 의해 지배당하는 곳이기도 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귀신이 그대로 머물러있는 곳이자 고된 삶에 시달려 생기를 모두 빼앗기고 귀신이 되어버린 자신들이 흘러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낙관도 의욕도 모두 잃어버린 것 같다.


고생과 좌절을 할 만큼 한 사람들에게 과연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일 여력이 있을까? 더구나 형제자매의 이야기에? 만일 이들이 그래도 너는 나보다 부모의 인정을 많이 받지 않았냐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데 몰두했다면 그들에겐 정말로 희망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이인 톈홍과 첫째, 둘째, 셋째 누나는 어릴 적부터 먹던 친숙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주거니 받거니 자기 얘기를 털어놓거나 상대의 사연을 듣는다. 그들은 오랜 세월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시련이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톈홍이 독일에서 남자 애인을 죽이고 감옥에 갇혔다는 단편적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세 누나 중 그 누구도 톈홍을 탓하기는커녕 자기 역시 남편을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 갇혀있음을 상기했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마침내 다 같이 모이자, 자신이 어쩌다 ‘귀신’이 되었는고, 다섯째 차오메이는 어떻게 목숨을 잃었으며, 그 뒤로 넷째 쑤제는 왜 집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지, 아버지는 왜 죽어서도 이 집을 떠나지 않는지를 조금 더 알게 된다.


소수자들이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것은 기대보다 쉽지 않다. 차별의 방식이 너무 다양한 나머지, 내가 받는 차별을 저들은 받지 않고, 저들이 받는 차별이 내게는 상관없다는 데에만 주목하면 각각의 차별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귀신들의 땅』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소수자의 관점에서 타이완 여성의 삶을 상세히 묘사한 작품으로서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이 소설은 모든 뿌리로부터 쫓겨나고도, 자신이 두고 온 누나들 하나하나의 다양한 삶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게이 남동생의 사랑과 연대 의지로부터 성립한다. 그리고 그렇게 묘사한 누나들의 모습 속에는 보수적인 아시아 사회에서 도전하다 좌절하고 분노하는 주부로 살아가면서도 해외로 유학 간 게이 남동생을 꾸준히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기억해주는 서로가 있었기에, 소설 말미에 그들은 더 이상 흐리멍텅한 귀신이 아니게 된다. 이 관계를 통해 아시아 여성이 오직 자기 손으로만 기록의 과업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이 묘사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떤지 들어보며 함께 역사를 만들어갈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아시아 여성은 오랫동안 서구 남성에 의해 신비화되거나 아시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었기에 작품 속에서 아시아 여성을 어떻게 해야 필요에 따라 왜곡하지 않고 올바르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나 장이머우의 <국두>에 아시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낭만화하지 않는가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에서부터 이민진의 <파친코>와 매기 강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한국계 여성들이 직접 여성의 과거와 현재를 재현하고자 노력한 시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여성을 순종적이면서도 끝까지 고난을 감내하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당사자들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동료 소수자들의 협력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다채롭고 신선한 아시아 여성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Google Creative Commons

조고은: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서적을 꾸준히 번역해왔다. 현재는 번역행정사로도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