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제탐사보도총회(GIJC 2025), 탐사보도기자는 어디에 있든 혼자가 아니다
‘외톨이 늑대’라는 단어가 있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혼자 일하거나 행동하거나 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미권 문학과 외신에서는 통상 형사나 탐정, 고립된 사회관계로 인해 테러리스트가 된 사람 등을 표현하는 데 자주 쓰인다. 기자들의 세계에서 ‘외톨이 늑대’는 보통 홀로 권력이나 거대한 이해관계 세력의 부정을 폭로하는 탐사보도기자나 전쟁을 취재하는 전선기자(war correspondent)로 통한다. 여기에는 경외심과 선입견이 동시에 들어 있다. ‘홀로’ 어렵고 긴 싸움을 해나간다는 경외심이 있고, 남다른 노하우와 경험세계 위에서 ‘혼자’인 것을 선택하는 도도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외톨이 늑대 기자는 ‘진실을 찾는 단독자’에 대한 비유인 셈이다.
‘외톨이 늑대’ 시대의 종말
지난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2025년 국제탐사보도총회(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ts Network Conference)는 ‘진실을 찾는 단독자’ 1,500여 명이 135개국에서 날아와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KLCC)에 모였다. 올해로 14회째 개최되는 총회에서는 탐사보도를 해왔거나 해보려고 하는 언론인과 언론사, 탐사보도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영리와 비영리 조직들이 모였다. 한 자리에서 150여 개 세션을 매개로 소통하고 노하우를 공유하고 협업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한국에서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신생 비영리 독립언론<두니아>, 그리고 시사주간 <시사IN> 등 3곳의 뉴스룸이 참여했다.
국제탐사보도 총회는 전세계 탐사보도 기자들이 모이는 국제 행사다. 2001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린 첫 번째 총회 이후, 암스테르담 (2005), 토론토 (2007), 릴레함메르(2008), 제네바 (2010), 키예프 (2011), 리오 데 자네이루(2013), 릴레함메르(2015), 카트만두(2016), 요하네스버그(2017), 서울(2018), 함부르크(2019), 온라인(2021), 예테보리(2023)에서 열렸다. 올해로 아시아 대륙에서는 세번째 개최됐다.
4일 동안 현장기자와 에디터, 언론 지원 단체 관계자들이 ▲탐사저널리즘의 국제적 협업과 경험 ▲데이터/기술 기반 저널리즘 및 탐사 보도 기법 ▲언론자유가 억압된 환경에서의 생존 전략(망명언론, 취재 안전과 보안)▲지속가능한 저널리즘 모델(새 미디어, 독립 미디어, 비영리/협업 모델) ▲부패, 금융범죄, 인권, 환경, 기후, 기후범죄 등 공공의제 중심 취재 노하우를 공유했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본 주제는 협업 모델과 기후였다.
협업 모델과 기후를 주제로 참여한 세션은 모두 7개였다. 취재 주제는 보건-건강, 환경, 기후였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참여하는 잠입취재 세션과 영화 압수수색 상영 세션도 참석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고 유용했던 세션은 두 개로 환경범죄 탐사보도 세션과 탄소 상쇄(carbon offset) 탐사보도를 주제로 다뤘다. 모두들 전문가 집단(과학자, 연구자, 법조인) 그리고 초국경 취재기자 간 협업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취재 결과물들을 소개했다.
11월 20일에 참여한 ‘국제 보건 이슈 탐사보도’ 사전회의 현장에서 “대기업에서 작은 뒷마당까지: 기후 변화를 ‘당장’의 공중보건 위기 이야기로 만드는 법”과 “국제 보건 독자 분석 기반 커뮤니티 전략” 세션에 참석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유용한 취재기법과 협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후변화를 당장의 보건 위기 이야기로 만드는 법’에서 2017년에 출범한 범아랍 뉴스플랫폼 Daraj Media와 2020년 출범한 이탈리아 자유기고가들의 초국경 연합체 FADA Collective가 각각 중동 지역에서 석유 회사들의 시추 활동이 어떻게 지역 공동체의 건강과 환경을 해치고 있는지 장기간 추적한 탐사보도 경험을 접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신력있고 독립적인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 협업하는 것이었고, 취재의 성패를 가른 것은 지역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시간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Daraj Media의 경우 이라크, 튀니지, 이집트에서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석유·가스·에너지 기업 BP(British Petroleum)와 마찬가지로 영국에 본사를 둔 네덜란드계 글로벌 에너지 기업 Shell 등이 에너지 생산과정에서 메탄을 태워 방출하는 가스 플레어링(gas flaring)이 10년 이상 지속된 결과를 주민들의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 미숙아 출산 및 재생산 건강 등을 통해 입증했다. 가스 플레어링은 메탄을 이산화탄소 같은 다른 화합물로 전환하는 행위다. 냄새, 색이 없고 연기조차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공기 중에 방출되어도 실체를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이 날 발표에 나선 Daraj Media의 탐사보도팀장 Hala Nouhad Nasreddine 기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 범죄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개인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FADA Collective는 석유 시추로 인해 물이 부족해진 이라크 사람들의 삶을 4년 동안 추적 보도한 경험을 공유했다. 미국의 초대형 석유가스회사 엑손, 러시아의 루크오일, 영국의 BP, 이탈리아 최대 석유회사 ENI 등이 이라크에 초래한 가뭄과 강수 오염을 추적했다. 석유를 시추하려면 물이 필요한데 이들 석유 회사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나오는 민물을 끌어다 썼다.
세션에서 발표를 맡은 FADA Collective의 자유기고 탐사보도기자 Sara Manisera는 “이라크에 물 위기가 있다면 그건 현장에서 석유 회사들이 ‘생명 보다 수익’을 위해 내린 경제적 선택들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노동자, 의료전문가, 정부관료, 주민, 활동가들을 포함해 40명 이상을 인터뷰했다.”며 현장에서 4년간 맺은 긴밀한 협업 관계 덕분에 ▲소아암 병원 안에 들어가 의료기록을 확보하고, ▲이라크 남부 메이산(Maysan)주의 국장이 작성한 석유 시추로 인한 강수 영향에 대한 지방정부 기밀 보고서를 농업부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장시간 현장 협업 덕분에 석유회사들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강수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입증할 수 있었다. 2022년부터 4년이 걸린 탐사보도를 위해 취재기자들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추가 수입원을 찾아야 했다고 한다.
11월 22일에 참여한 “탄소 상쇄(carbon offset)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세션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의 배출권 인증 자율 기준(voluntary standard)이 얼마나 이해상충적인지를 드러내는 취재방법론을 다뤘다. Verra, Gold Standard, American Carbon Registry, Climate Action Reserve 등 탄소 배출권 인증기관은 모두 국제적 또는 미국 기반의 자율 기준 형식으로 기업과 프로젝트 단위의 탄소 배출권을 인증하고 있다. 모두 감사기관과의 이해상충 혹은 인권 침해, 환경 파괴와 관련한 문제가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세션의 핵심을 요약할 수 있다(한국 정부의 국외 탄소배출권 확보 사업은 Verra 탄소배출권인증을 이용하고 있다).
이 세션의 방점 역시 초국경 기자간 협업과 회계사, 법조인 등 전문가와의 협업이었다. 캄보디아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자유기고 탐사보도 기자 Leila Goldstein은 주제 특성상 내용이 이론적이고 감사 보고서 등 수많은 문서로 입증해야 하는 만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찾는 것이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정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코스타리카에 기반을 둔 라틴 아메리카 탐사보도팀 EL CLIP의 Andreas Bermudez Lievano 기자는 “탄소 배출권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때는 항상, 반드시 변호사를 옆에 두고 기사를 검토해라. 환경 보도 만큼 법적 위협에 있어 공격적인 분야를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규제가 되지 않은 시장에서 돈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며 법조인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시사주간 Tempo의 부편집장 Bagja Hidayat 기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회사들의 토지거래권과 산림벌채권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부 내부 전문가와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Bagja는 “인도네시아 기자들은 모든 범죄조직, 불법 행위 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언제나 반드시 단 한 명이라도 있으니 그들과 협업해서 정보와 자료를 제공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외톨이 늑대’들’의 여정
기자경력 14년만에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언론인들을 동시에 만난 것은 처음이다. 2011년 취재 경력을 시작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취재기자와 에디터들,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선배 언론인들, 바이라인을 보며 언젠가 만나보고 싶었던 기자와 편집장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외롭게 현장 취재를 이어왔다고 여겨왔던 시간 동안 어떤 기자들은 매년 혹은 격년마다 만나서 취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취재의 돌파구를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취재비를 조달할 방법을 강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네트워크를 알고 접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특권처럼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참가비는 미화 380달러이고, 스폰서가 없다면 교통비와 식비, 숙박비 등 체류비는 자비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돈 내고 올 수 있는 북반구 사람들 잔뜩 데려올 바에야 국제탐사보도 총회를 왜 하냐? 내가 국제탐사보도네트워크라면 북반구 기자들 스폰서 해줄 돈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기자들을 더 많이 데려오겠다.”
11월 20일 사전회의 중간 휴식 중 어디선가 이런 말을 하는 남성의 크고 성난 목소리를 들었다. 그날 저녁 환영 리셉션 현장에서 뉴스타파 협업에디터 김용진 기자를 통해 소개받고 보니 그 성난 목소리의 남성은 유네스코가 출간한 <서사 기반 탐사: 탐사보도 기자를 위한 매뉴얼>라는 탐사보도 교재를 작성한 마크 리 헌터라는 기자였다. 전통적인 ‘외톨이 늑대’의 도도한 단독자 이미지의 그는 놀랍게도 국제탐사보도네트워크 창립자 중 한 사람이었다. 창립자의 눈에 14회차 총회를 여는 국제탐사보도네트워크의 패널들이 대부분 북반구 사람인 것이 매우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언어능력, 기술, 비용과 시간이 필수인 이런 거대한 협업 네트워크에 닿지 못하는 아시아의 외톨이 늑대’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시아 각국의 독립언론과 기자, 시민사회단체, 연구자들과 탐사보도 네트워크를 형성해 여과되지 않은 아시아의 뉴스와 전망을 신선하게 보급한다’는 두니아의 창립 미션과 비전을 상기하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외톨이 늑대’들’ 앞의 긴 여정을 떠올렸다.
취재 이슬기 기자 - skidolma@theduni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