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네팔-티벳 홍수, 슬픔과 희망은 함께 간다
By 소니아 아왈레 (Sonia Awale)
카트만두 – 카트만두의 병원에서는 온통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직 신원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시신이 부패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흘이나 지났으니 살아 있을 리가 없어요.”
이곳에는 기적적인 생존의 이야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빗속에서 병원 밖에 서성이며 대기하는 가족들은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운명에 순응하고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그저 시신이라도 찾아 슬픔을 매듭짓고 마음의 정리를 하고 싶어 할 뿐이다.
다른 이들은 인내심을 잃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지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피한다. 우리는 생존자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그들의 트라우마에 공감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도 구사일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다.
“당신들의 카메라가 우리 사람들을 돌려보내 주나요?” 한 여성이 자신들의 눈물을 촬영하는 극성스러운 외신 취재진에게 묻는다. 그녀의 친척들이 그녀를 위로하려고 애쓴다.
딜 쿠마리 마스랑기 마가르(Dil Kumari Masrangi Magar)는 병원 정문에 수십 장의 영정 사진과 실종자 이름이 길게 인쇄된 종이 옆에 자신의 형부와 조카의 사진을 붙이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 어딘가에서 그들을 보았을지도 모르니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달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희망을 품는 것밖에 없어요.” 그녀는 우리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그저 시신일 뿐이라 해도, 최소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근처에서 디르가 마야 쿨라미 마가르(Dirgha Maya Kulami Magar)가 대화에 동참한다. 그녀의 조카도 실종 상태다. 그녀는 홍수가 나기 전 그날 아침 그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여성과 그들의 가족은 원래 우다이푸르(Udaypur) 출신이다. 그들의 친척들은 8월 26일 아침 라수와(Rasuwa)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네팔에서 여전히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약 2,500명 이상의 사람들 중 일부다. 트리술리(Trisuli) 강을 삼킨 진흙 사태(토사붕괴)로 인해 중국에서도 추가로 500명이 실종됐다.
기적적인 생존 이야기가 한두 건 있기는 하다. 금요일 밤, 구조대원들은 중국 국경 부근의 티무레(Timure)에 위치한 무너진 주택 잔해 아래에서 가녀린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진흙을 파헤쳐 여섯 살짜리 소녀 마니샤(Manisha)를 구조해 냈다.
80명이 넘는 수력발전소 노동자들이 네팔 군에 의해 터널에서 구조됐지만, 트리슐리 강과 그 지류를 따라 진행 중이던 12개 프로젝트 현장에서는 여전히 수백 명이 실종 상태다. 특수 장비를 갖춘 중국과 인도 구조팀이 갇힌 이들에게 도달하기 위해 시간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진흙 장벽
일부 사람들은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사람들을 찾기 위해 개인 헬기를 전세 내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수색 및 구조 활동에 헬기가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하므로 이를 자원 낭비라며 만류하고 있지만 말이다.
수바시 타망(Subash Tamang)은 관광버스 운전사였던 실종된 친척들을 찾기 위해 둔체(Dhunche)로 향했다. 두 사람은 국경에 관광객들을 내려주고 떠나던 중이었으며, 진흙 장벽이 무너져 내리기 30분 전인 오전 8시 31분까지는 연락이 닿았다.
그는 시신이 그곳까지 쓸려 내려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치트완(Chitwan)에 갔다가 현재는 카트만두에 와 있다. 우리는 그가 경찰관에게 “그들이 어딘가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꿈을 계속 꾼다. 헬기를 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이어 그는 목소리에 절박함을 담아 우리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 같은 기자들의 도움으로 그들을 곧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네팔의 공식 사망자 수는 수습된 시신 수를 기준으로 하며 현재 700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이 수치는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이번 사태는 이 지역에 큰 타격을 주었던 2015년 대지진 이후 최악의 재난이 됐다.
상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고 있는 가족 중 하나는 케사리 타망(Kesari Tamang)이다. 그녀는 매일 병원을 찾았고, 오늘 저녁 우리는 그녀가 시신 사진 한 장을 아주 자세히 살피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시신의 손가락에는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녀의 남동생 산카 부다(Sankha Budha)가 끼던 반지와 똑같았다.
그는 베트라와티(Betrawati)에서 휩쓸려 내려간 다리 중 하나 옆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경찰 안내소에서 그녀는 그 시신의 키가 약 5.6피트(약 170cm)이고 밝은 피부색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시신이 카필바스투(Kapilvastu)에서 수습되었기 때문에, 타망과 가족들은 신원을 확인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피프라 병(Pipra Hospital) 영안실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내일 일찍 출발하면 10~1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할 겁니다. 그가 아니라면 그냥 돌아오겠지만, 그가 맞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친척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망자들의 사진은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며, 일부에서는 이처럼 생생한 이미지를 공개적으로 게시하는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현재로서 이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신원 확인 방법이다.
이어 우리는 서로 꼭 닮은, 외아들인 남동생 산토시 싱 타망(Santosh Thing Tamang, 23세)의 정보를 찾고 있는 한 무리의 자매들을 만났다. 8녀 중 첫째인 샨티 마야 타망(Shanti Maya Tamang)은 그날 병원에 도착한 시신들의 새로운 사진 더미를 병원 측에서 들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산토시는 네팔-중국 국경 근처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케룽(Kerung)을 거쳐 휴가를 보내기 위해 카트만두로 오던 중이었다. 그는 네팔 시간으로 오전 7시 30분에 출발했기 때문에 홍수가 덮쳤을 때 국경에 있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자매들과 락샤 반단(Raksha Bandhan)을 보내기 위해 5일 동안 휴가를 냈어요.” 샨티 마야가 말했다. “부모님은 동생을 찾았느냐며 계속 전화를 하십니다. 우리는 계속 돌아다니고 있지만 여기서 동생의 사진이나 이름을 어떤 명단에서도 찾을 수 없어요. 비두르(Bidur) 캠프에도 없고, 틱톡도 찾아봤어요.”
자매들은 카트만두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있고 월세방에 살고 있다. 그들의 부모님은 산 높은 곳에 위치한 라수와의 보틀레(Bhotle)에 있어 안전한 상태지만 마을로 가는 도로가 유실되어 이동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샨티 마야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품을 희망도 다 소진해버렸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가족은 안전하지만, 마을들이 전부 사라졌어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요.”
(네팔의 홍수 피해 지역 사회를 돕고 싶다면 이곳에서 총리 재난구호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추가 정보는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네팔 영자주간 <Nepali Times> 에 의해 2026년 8월 30일 최초 보도됐으며, 허가를 받아 한국어로 번역, 재게재합니다.
취재 소니아 아왈레(Sonia Awale)
소니아 아왈레는 Nepali Times의 편집장이자 보건·과학·환경 담당 기자다. 기후위기, 재난 대비, 개발과 공중보건 문제를 정치·경제적 상관관계 속에서 폭넓게 취재해왔다. 공중보건을 전공했으며, 홍콩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 및 편집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