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2,600만원 자카르타 부촌 한복판, 중산층의 파격 주거 실험

평당 2,600만원 자카르타 부촌 한복판, 중산층의 파격 주거 실험

By 무함마드 이쇼무딘(Muhammad Ishomuddin)

  • 자카르타 부촌 멘뗑의 땅값이 평당 2,600만 원에 육박하면서, 중산층은 열악한 임대나 무리한 대출 사이에서 내몰리고 있다.
  • 건축가 마르코 쿠수마위자야가 자신의 사유지에 주민 협동조합형 공동주택 "루마 플랫 멘뗑"을 지어, 소유가 아닌 '거주할 권리를 저축하는' 방식으로 투기를 원천 차단했다.
  •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에 교통까지 편리해 주민 만족도가 높으며, 대기 신청만 2천 가구에 달해 반둥·족자카르타 등으로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자카르타 – 주변의 높은 건물들에 가려진 한 주택의 앞 울타리에는 "집 팝니다, 중개인 사절, 즉시 연락 바람"이라고 적힌 빛바랜 작은 노란색 현수막이 붙어 있다. ‘루마 플랫 멘뗑’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런 현수막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공동 주택 단지는 대로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진입로가 좁아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자카르타 중부의 고급 주택가인 멘뗑(Menteng) 지역의 토지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의 현재 평당 가격은 1억 루피아(한화 약 2,600만 원)에 육박하며, 주택 가격은 수십억에서 수천억 루피아에 이른다. 

그러나 중산층은 수준 이하의 임대 방이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파트에 갇히거나, 단독 주택을 사기 위한 주택담보대출 부담으로 허덕이고 있다.

‘루마 플랫 멘뗑’은 이런 자카르타 멘뗑 지역에서 건축가 마르코 쿠수마위자야가 자신의 사유지 위에, 정부나 개발업자의 개입 없이 지은 4층짜리 공동주택이다. 

주민들이 직접 결성한 협동조합이 토지를 70년간 임차하고 건설·관리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미국 건축가 대니얼 패롤렉이 제시한 '사라진 중간층 주거(Missing Middle Housing)' 개념을 적용해 단독주택과 고층 아파트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대안적 주거 모델로 알려져 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집", 마르코의 오랜 구상 

지난 2020년, 마르코 쿠수마위자야(Marco Kusumawijaya)는 자카르타 멘뗑 지역의 1990년대 후반부터 소유해온 약 280평 규모의 땅에 자신의 오랜 꿈을 펼쳐보기로 했다. 지인들이 함께 살 수 있는 4층 짜리 공동주택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는 공동주택 실험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자카르타 멘뗑에 본부를 둔 도시연구·활동 단체  루작 도시연구소(RUJAK Center for Urban Studies, RCUS)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건물 설계는 안데샤 헤르민토모(Andesha Hermintomo)가 담당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고, 건축 설계와 동시에 실험적 주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증진하기 위한 홍보 활동 같은 노력도 병행해야 했다. 그 결과 탄생한 ‘루마 플랫 멘뗑’은 자카르타 주정부의 세부 공간 계획에 관한 2022년 주지사 규정 제31호에 따른 인도네시아 최초의 공동주택이 됐다.

루마 플랫 멘뗑의 건설은 2023년에 시작, 2025년 초에 입주가 완료됐다. 250평 부지 위에 지어진 408평 규모의 이 건물은 2층부터 4층까지 총 6개 세대가 살고 있다. 1층에는 사무실, 임대 공간, 서점 겸 카페가 들어서 있다. 현재 이곳에 6가구, 총 1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집이 아니라 "거주할 권리"를 산다 

소유와 운영 구조 또한 독특하다. ‘루마 플랫 멘뗑’의 핵심은 소유권과 관리권을 분리해 투기를 방지하는 구조에 있다. 

토지는 여전히 마르코 개인 명의로 남아 있지만, 주민 협동조합이 지상권을 확보해 건물을 관리한다. 루마 플랫 멘뗑 주민들은 마르코 소유의 토지를 연간 9,000만 루피아(약 715만원)의 요율로 70년간 임차(갱신 가능)한다. 임대료는 각 주민이 사용하는 세대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임대료는 인플레이션에 맞춰 5년마다 인상하기로 사전 합의되어 있다.

주민들이 낸 건설 비용은 매매 대금이 아닌 ‘의무 저축’으로 처리되어 5년 이상 거주 후 퇴거 시 그대로 환불 받는 방식이다. 

루마 플랫 멘텡의 건설 비용은 평당 800만 루피아(약 63만원) 미만으로 유지됐다. 이는 자카르타의 평균 4층 건물 건설 비용인 평당 약 1,160만 루피아(약 92만원)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이다. 필요한 초기 자본은 가장 작은 세대(40평)의 경우 3억 8,000만 루피아(약 3,017만원)에서 가장 큰 세대(120평)의 경우 10억 루피아 수준이다. 

주민들은 이렇게 건설 비용을 분담하고, 이 초기 비용은 협동조합에 대한 의무 저축으로 취급된다. 또한 공증인 수수료와 공용 시설 건설 비용도 반영된다. 주민들은 또한 건설 안전 표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건물의 물리적 설계가 자신들의 요구에 맞게 조정되도록 건설 과정 전반에 참여한다. 

‘루마 플랫 멘뗑’은 집을 ‘사고파는 자산’이 아니라 ‘거주할 권리를 저축하고 돌려받는 것’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하는 중이다. 시세 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나 임대료 상승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 이 공동 주택 모델의 독특한 지점이다.

이러한 관리 모델은 북부 자카르타의 깜뿡 수순 아쿠아리움(Kampung Susun Akuarium)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곳은 정부 소유 토지 위에 건설됐지만 관리는 주민 협동조합이 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루마 플랫 멘뗑은 사유지 위에 정부의 개입 없이 온전히 주민들의 자발적인 주도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지어졌다.

주민들의 총괄 조직 역할을 하는 '루마 플랫 멘뗑 다목적 협동조합(Koperasi Serba Usaha Rumah Flat Menteng)'은 주민들과 협력해 합의안을 작성한다. 주민들이 주택 건설 및 관리에 참여해 개발사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 협동조합 활동의 핵심이다. 

통근 시간과 비용 모두 줄였다

루마 플랫 멘뗑 입주 후 주민들의 삶의 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자카르타 중심부에 위치해 수디르만역, 통근열차, 지하철, 경전철, 트랜스자카르타 버스 정류장이 모두 가까워, 주민들은 자가용이나 오토바이 없이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다. 

안디 하르디안샤(Andi Hardiansyah)와 파메가 샤비라 푸트리(Famega Syavira Putri) 부부의 경우 교통비가 월 500만 루피아(약 40만원)에서 70만 루피아(약 5만 5천원)로 크게 줄었고, 통근 시간도 대폭 단축됐다.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안디는 "내 집과 소유권 증서가 있더라도, 이동할 때마다 통근 비용이 늘어나는 먼 곳에 사는 것보다 여기가 훨씬 낫다. 그것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고 말했다.

BBC뉴스 인도네시아에서 소셜 미디어 담당자로 일하는 파메가는 이제 사무실까지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전 거주지에서는 대중교통으로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안디와 파메가는 돈을 저축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여기서는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고, 자유 시간도 많다. 또한 함께 양질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안디는 덧붙였다.

공동체 분위기도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다. 주민들이 함께 정한 흡연 구역 규칙, 앞마당의 그늘나무, 1층 서점 겸 카페에서 열리는 정기 독서토론회 등이 어우러져 루마 플랫 멘뗑만의 활기찬 생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카르타에 이어 반둥, 족자카르타까지 확산 중

루마 플랫 멘뗑 모델은 토지 소유주와 젊은 무주택 가구 모두에게서 큰 관심을 받았다. 

이에 루작 도시연구소(RCUS)는 후속 프로젝트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토지 소유주는 RCUS의 디자인 개념을 승인한 뒤 현장 조사, 환경 평가, 등기 확인, 인허가 절차를 거치며, 신청 가구가 2천 가구에 달했지만 실제 건설 예정 세대는 40세대 안팎에 그친다. RCUS는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만 선별해 받아들였다.

2026년 RCUS는 자카르타 곳곳에서 8건의 플랫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고, 그중 3건이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다. 특히 자카르타 남부 빤초란 부지는 원래 매각 후 상속인 세 명이 수익을 나누려던 계획이었으나, 루마 플랫 멘뗑을 접한 뒤 자녀 한 명당 한 세대씩 상속받고 부모는 계속 임대 수익을 받는 대안으로 방향을 바꿨다. 부동산 매각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토지 소유주에게 실질적인 대안이 된 사례다.

이 모델에 대한 관심은 자카르타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반둥의 랩텍 인디 커뮤니티(Labtek Indie community)는 공동 사례 연구를 진행했고, 족자카르타의 스튜디오 따나(Studio Tanah)는 이웃 찾기 클럽과 함께 토론 포럼을 열었다. 스튜디오 따나는 이미 2022년 13가구 규모의 친환경 공동주거 프로젝트 "사마디야 공동 주거"를 지은 경험이 있으며, 이 과정을 책으로 펴내 최근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중산층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대안이 되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도심 부동산은 삶의 질보다 상업적 가치로 평가받아 왔다. 일부 극상위 부유층은 임대 목적이 아닌 순수 투자용으로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며 시장 혼란을 부추겨 왔다. 

이런 인식과 환경 속에서 루마 플랫 멘뗑은 중산층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10년 이상 안정된 소득과 충분한 초기 저축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가능한 실험이라고 하기엔 진입 장벽이 있는 셈이다. 저소득·불안정 소득층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입주 1년이 지나면서 설계상의 허점들도 드러났다. 엘리베이터 부재, 위험한 발코니 난간 간격, 잘못된 조명 스위치 위치, 방수층 미비로 인한 누수 등 시공 감독 부실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확인됐다. 안디는 "앞으로는 품질 관리가 엄격히 이루어져야 한다"며, 주민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세부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루마 플랫 멘뗑은 시장 평균가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품질의 집을 주민들의 공동 노력으로 만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RCUS는 후속 프로젝트를 더 철저히 계획해 나갈 예정이다. 안디는 이 개념이 인도네시아 어떤 도시에서도 복제될 수 있다며, 공식은 같아도 각 도시가 마주할 과제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무함마드 이쇼무딘(Muhammad Ishomuddin) - muhishom@protonmail.com 

무함마드 이쇼무딘은 환경 문제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인도네시아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포토저널리스트다. 그의 작업물은 VICE와 New Naratif에 게재된 바 있다. 

번역 및 편집 이슬기 - skidolma@thedun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