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북클럽] 엘리자베스 피사니 저 『인도네시아 Etc.』 서평: 나는 왜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가

[두니아 북클럽] 엘리자베스 피사니 저 『인도네시아 Etc.』 서평: 나는 왜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가

이슬기 (두니아 대표, 편집장)

새로운 문화와 국가를 접할 때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그것은 우리가 타인을 만나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생기는 변화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나와 어떤 나라의 조우와 나와 어떤 사람의 조우를 비교할 수 있다면, 나와 인도네시아의 만남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소울메이트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나는 인도네시아를 만나기 전과 후에 가치관과 세계관이 크게 변화했다. 만약 어떤 외국 나라와 이방인인 나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인격체 둘의 만남처럼 치환해 설명할 수 없다면, 내가 인도네시아를 접하고 변화하고 사랑까지 하게 된 여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2026년 두니아 북클럽 하반기 8월 선정도서 <인도네시아 Etc.>와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피사니는 이런 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인도네시아 기타 등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책은 17,000여 개의 섬, 수백의 종족과 언어,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인도네시아’라는 하나의 국가를 이룬 불가사의를 직접 여행하며 탐구한 관찰기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도시에 관광과 출장 등으로 잠깐 방문한 사람보다는 그곳의 삶 속에 들어가서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살아본 사람에게 더 많은 맥락과 이야기거리를 제공할 책이다. 저자는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인도네시아에서 외신 기자와 의료 인류학자, 감염병 역학자로 살았고, 이 책은 그가 계속해서 다시 찾게 되는 ‘말이 안되는 나라‘ 인도네시아 전역을 2011년부터 13개월간 여행한 뒤 쓴 탐험기이자 종합 보고서다.

‘말이 안되는 나라’의 역설

책에서는 인도네시아를 가리켜 ‘말이 안되는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 과거 식민주의자들이 멋대로 그은 국경 안에서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의 국가로 묶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리한 도전인지도 나온다. 책의 제목 ‘인도네시아 기타 등등’이라는 말은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연설에서 따왔다.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연설에서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1945-1967)은 “이로써 우리 인도네시아 인민은 인도네시아 독립을 선언한다. 주권 이양 및 기타 등등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신속하고 신중하게 이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어, 지리, 종교와 문화 정체성이 완전히 다른 2억 4,0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로 정치-경제적 공동 운명체가 됐다.

그러나 이 말이 안되는 나라는 나를 변화시켰다. 새로운 것, 다른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는 경험을 처음 선사한 나라라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2011년 9월 23일 인도네시아에 처음 도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도네시아라는 국가가 유지되는 미스터리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탐구하게 됐다. 

<인도네시아 Etc.>의 저자 역시 나와 같은 변화를 겪었던 듯하다. 500여쪽에 걸쳐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까지 9개 섬을 돌며, 다양성의 끝판왕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묶는 ‘붉은 실’의 정체를 탐구한다. 그 결과 저자는 여러 개의 질기고 성긴 실들을 발견하는데, 그 중에는 인도네시아어, 종교, 소비자 정체성, TV/라디오, 관료제, 그리고 집단주의가 있다. 다양한 차이와 이질성, 격차를 극복하려는 욕구는 건국이념 ‘비네카 퉁갈 이카(Bhineka Tunggal Ika,  다양성 속의 통일)’는 물론 “우리 모두 외치자/인도네시아여 하나되자”(Marilah kita berseru/Indonesia bersatu)라는 인도네시아 국가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놀라운 점은 인도네시아가 인도네시아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새롭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열린 마음과 환대라는 데 있다. 이미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는 내부와 외부, 피아를 구분하는  행위가 억지스럽다. 그런 믿음에 근거해 다른 것을 합치거나 제거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폭력으로 점철됐다. 

인도네시아 현대사 속 비극은 대개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를 구분하려는 시도, 천주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서로 다르다는 주장, 동티모르와 파푸아, 아체를 인도네시아답게 합치고 바꾸려는 억압 등이다. 저자 역시 여기에 대해 “보기 드문 너그러운 마음, 차이에 대한 관용 또한 풍요로운 땅의 국민 인도네시아인을 하나로 묶어준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차이에 대한 무지, 적대와 혐오는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묶는 마법의 붉은 실을 끊는 자멸의 길이라는 뜻이다.

‘붉은 실’이 끊어질 뻔한 순간들

책의 중후반부는 술라웨시, 말루쿠, 북수마트라, 칼리만탄, 자바와 롬복을 여행하면서 관찰한 정치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의 축복과 저주, 분리주의의 과거와 현재, 정상성의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 인종문제, 종교적 극단주의 등이다. 

저자는 다양한 종족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는 누가 그 땅의 ‘선주민’인가를 따지는 질문이 폭력으로 비화되는 사정도 추적했다. 특히 칼리만탄섬의 다약족, 말레이족, 마두라족 간의 긴장을 다루고 있다.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는 다약과 마두라 사이에 유혈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수하르토 정권(1967-1998) 시절 시행된 이주 정책으로 자바섬 주민들 다수가 다른 섬으로 이주했는데, 그 이후 생긴 자바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의 땅과 자원 접근에 대한 갈등까지 더해진 상태다. 이런 패턴은 인도네시아령 파푸아에서도 반복됐다.

자원의 축복이 외국 광업 자본과 부패한 지방과 중앙 관료의 배를 불려주지만 지역민은 오히려 그 땅에서 소외되는 현장이 여행자의 눈에도 생생하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그저 관찰자로 머물 수 없다. 삼성, LG, 포스코, 현대 등 대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벌이는 많은 수익사업을 둘러싼 갈등도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묶는 마법의 붉은 실을 끊는 리스크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국내외 언론을 통해 간간이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한국의 기업과 자본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후 발생한 갈등은 인도네시아 안에서 K-pop의 인기 만큼이나 널리 알려져 있다.

가령 포스코가 책 7장의 무대인 할마헤라섬에 세운 니켈 제련공장은 2010년대 말부터 인도네시아 시민사회와 현지 주민들로부터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LX인터내셔널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줄지어 진출한 흐름만 봐도 한국이 인도네시아 선주민 간 갈등, 환경 파괴, 부패비리 등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의 어떤 기업과 자본이 진출했는지 등의 서술은 하지 않았지만,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섬에 한국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만약 한국인 저자가 인도네시아를 13개월간 여행한다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한국 관련 문제가 발견될 지 모른다. 수도 자카르타만 방문해선 접할 수 없는 한국에 대한 원망과 비판이 인도네시아 동쪽과 서쪽 섬에서는 더 많이 쏟아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붉은 실은 끊어지지 않았다. 외국 자본과 종교 근본주의 세력, 기회주의/권위주의 정치인과 군부가 이 실을 끊으려 해도, 인도네시아 안에는 이걸 막는 시민 사회, 현지 언론, 활동가들이 있다. 저자는 책에서 붉은 실 역할을 하는 문화적 공통점을 관찰하고 제시했지만, 어쩌면 지금 인도네시아를 묶는 붉은 실은 자유롭고 비판적인 시민사회 , 변호사와 독립 언론, 근현대사와 현실의 삶을 성찰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연대 아닐까 한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어느 외국과의 만남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존재를 잊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라는 역자 박소현의 말처럼 인도네시아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절대 몰랐을 세계와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2006년 9월 인도네시아에 처음 발디딘 역자는 해마다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그는 “내가 알던 세계는 서울에서 일본, 북미나 유럽으로만 확장 가능한 뻔한 것이었는데, 인도네시아에 와보니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이슬람 세계로도,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태평양 섬 세계와 동남아시아는 물론 더 광대한 ‘제3세계’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 엘리자베스 피사니, 역자 박소현, 독자 이슬기가 자꾸만 다시 찾게 되는 인도네시아는 이렇게 세계를 계속 넓혀주는 존재다.

‘두니아’는 인도네시아어로 ‘세계’를 뜻한다. 아시아를 다루는 비영리 독립언론 창간 당시 ‘두니아’라는 이름을 맨처음 떠올린 건 인도네시아에 살고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운 경험 덕분이다. 두니아도 인도네시아를 인도네시아일 수 있게 하는 붉은 실의 한 가닥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시아가 두니아를 통해 서로 만나고, 차이를 알아가고, 그리고 오래오래  우리의 외연을 넓혀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모든 것은 인도네시아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이런 나라, 이런 만남이 있나요?


이슬기 (두니아 대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