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격에서 통일교 해산명령까지: 일본의 40년 정교유착 그림자

아베 피격에서 통일교 해산명령까지: 일본의 40년 정교유착 그림자
통일교 일본본부(도쿄, 시부야 소재) 전경 (사진 : 이슬기)

2022년 7월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서 연설 중이던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두 발의 총알이 날아들었다. 체포된 용의자는 42세 야마가미 테츠야. 일본 현대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전직 총리 피격 사건에 즉시 범행 동기와 배경을 둘러싼 의문이 뒤따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 가지 사실이 부각됐다. 야마가미는 통일교 헌금 피해로 파탄난 가정 출신이었고, 이런 배경이 범행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1970~90년대 내내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가 옴진리교 테러 사건으로 수면 아래 묻힌 통일교 헌금 착취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베 피격 사건 발생 1년 반 뒤, 일본 문부성은 통일교 일본 본부에 종교법인 해산명령을 청구했고, 2025년 3월 도쿄지방법원은 이를 인용해 통일교 법인 해산을 결정했다. 한국보다 먼저 통일교 문제를 고민해온 일본의 40년 역사를 뉴스타파와 두니아가 현지 취재로 추적했다.

1960~70년대: 반공 네트워크에 기대 일본에 들어간 통일교

통일교는 1964년 7월 15일, 일본에서 새로운 종교법인으로 공식 등록했다. 당시는 일본 우익 세력이 활발히 반공 운동을 벌이던 시기로, 통일교의 일본 정착 배후에 총 5명의 핵심 인물이 있었다.

일본 독립 탐사보도 매체 탄사(TANSA)의 와타나베 마코토 편집장은 당시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에서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사사카와 료이치 일본경륜협회장, 정치 브로커 코다마 요시오가 통일교의 일본 진출을 돕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본다.

“기시, 사사카와, 코다마는 모두 A급 전범 출신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와 김종필은 통일교를 반공 운동에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문선명을 이들에게 추천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통일교 일본 본부는 기시 노부스케의 관저 바로 맞은편에 자리 잡았고, 자민당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일본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문선명, 사사카와, 코다마, 그리고  쇼카이세키(장제스(蔣介石)의 일본식 발음) 등이 주축이 돼 반공 국제 조직 세계반공연맹(WACL) 을 결성했다. 이어 1968년에는 기시·사사카와·코다마 등이 발기인으로 국제승공연합을 발족하며, 통일교는 일본 우익 정치권과 반공 네트워크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통일교 문제를 추적해온 아리타 요시후 민주당 의원은 이 시기 통일교를 이렇게 규정한다.

“한국에서 통일교가 종교와 산업이 혼합된 형태였다면, 일본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종정공동체’에 가까웠습니다.”

1970~90년대: 10년간 2조 원 모여… ‘영감상법’과 헌금 착취의 시대

1977년, 문선명은 일본 본부에 대대적인 송금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일본 곳곳에서 ‘영감상법(霊感商法)’ 피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조상 해원, 액운 제거 등을 명분으로 고가의 물품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아리타 의원은 이렇게 증언한다.

“1977년부터 10년간 약 2000억 엔(약 2조 원)이 영감상법으로 걷혔습니다.”

전 통일교 목회자도 익명 인터뷰에서 당시 실태를 이렇게 밝혔다.

“80년대엔 영감상법이 극심했습니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이나 석가탑을 모사한 석탑을 팔았고, 대부분 일신석재(통일교 운영 업체-필자 주)에서 만든 물품이었습니다.”

통일교는 일본에서 거둔 천문학적 헌금을 여러 해외 사업에 투입했다.

미국에는 워싱턴타임즈, 중국에는 팬더자동차, 북한에는 평화자동차, 베트남에는 메콩자동차 등 각종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 돈을 자본금으로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일본 가정이 재정적으로 파탄났고, 피해가 누적됐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그 피해가 한 청년을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바로 2022년 7월 8일 야마가미 테츠야의 아베 총격 사망 사건이다.

야마가미의 동기: ‘1억 엔 헌금’과 파탄난 가정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통일교에 1억 엔 이상을 헌금했고, 그로 인해 가정이 파탄났다고 진술했다. 자신은 대학 진학도 포기해야 했다고 했다.

그는 2019년 한학자 총재의 일본 방문 당시에 공격을 계획했지만 실행에 실패했으며, 이후 목표를 아베 신조 전 총리로 바꾸었다고 진술했다.

아리타 요시후 의원은 그 배경을 이렇게 정리한다.

“야마가미는 아베가 통일교와 관계가 깊다는 사실, 아베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문선명과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2022년 UPF(천주평화연합-필자 주) 평화서밋에서 아베가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한학자를 칭송하면서 가정의 가치를 강조한 메시지를 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아베 피격 이후: 일본 정부, 종교법인 해산 절차 착수

2023년 10월 12일, 일본 문부성은 법원에 통일교 일본 본부에 대한 종교법인 해산명령을 청구했다.

그리고 2025년 3월 2일, 도쿄지방법원은 문부성 청구를 인용해 통일교 법인 해산을 명령했다.

판결문에는 헌금 권유의 구조적 위법성이 명시됐다. 또 헌금 활동이 통일교 교리와 결합해 체계적·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헌금 권유 행위는 개인의 재산권과 생활의 평온을 침해하며, ‘법령에 위반하여 공공의 복지를 현저히 해친 행위’에 해당한다.

(종교법인법 제8조 제1항 제1호)

법인격을 유지하도록 두는 것은 극히 부적절하다.”

통일교 측: “정치적 재판… 종교 자유 침해”

그러나 통일교 측은 해산 명령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창식 전 UPF 회장은 두니아와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헌금은 민사 문제일 뿐이고 위법 사항이 없다. 기시다 정권이 하루아침에 법을 바꿔 정치적 의도로 해산을 추진했다.”

통일교 일본 본부 측 변호인인 타츠 나카야마 역시 종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한다.

“우리 단체는 60년 동안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권 문제이며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통일교헌금피해대책변호단 측 시각은 다르다. 변호사 아베 씨는 실제 통일교 관련 회사나 신도가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특정 상거래법 위반이나 약사법 위반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 사회의 쟁점: ‘종교의 자유’인가, ‘사회적 책임’인가

아베 피격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종교단체의 헌금 착취 피해와 국가의 규제 책임을 두고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일부에서는 해산명령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지만, 아리타 의원은 단호하다.

“종교 활동을 막는 것이 아니다. 법인 해산과 종교의 자유는 무관하다.”

일본 언론의 전망: “문제는 통일교만이 아니다”

와타나베 마코토 탄사 편집장은 일본 사회가 이번 사안을 단순히 ‘통일교 문제’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일본 사회가 피해자 회복을 끝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통일교와 자민당 유착도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건, 통일교와 같은 방식으로 거짓 서사를 팔며 피해를 만드는 조직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것입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피격 사망 사건은 한 개인의 폭력을 넘어 일본 사회가 수십 년간 외면해온 문제를 다시 꺼내놓았다.

정치와 종교 유착 기반 위에서 성행한 통일교의 일본 활동과 그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헌금 피해 사례가 결국 ‘종교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남겼다.

취재 이슬기 기자 - skidolma@thedunia.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