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악의 노동 탄압... '인질사법'에 맞선 일본 노조
2018년, 일본 전후 최악의 노동운동 탄압 사건이 발생했다.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동조합 간사이 지구 레미콘 지부(이하 간나마 지부)가 주도한 총파업 이후, 무려 80명이 넘는 조합원을 경찰이 무더기로 체포했다.
폭력 행위 없는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었으나 일본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이들을 '반사회적 세력'으로 몰아 장기간 구속하는 이른바 '인질사법' 관행을 반복했다. 이 간나마 지부가 지난 3월 25일 부산을 방문했다. 이들은 부산 체류 이틀간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각자 겪은 노동탄압과 투쟁 과정을 공유했다.
두니아는 간나마 지부의 부산 방문 때 이들과 자문 변호사를 만나 일본 정부의 노조 탄압 과정 등을 인터뷰했다. 두니아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2018년 간나마 지부 탄압 사건의 전말과 노조 활동가의 삶을 파괴한 일본 사법제도의 실체를 심층 보도한다.
합법적 노조 활동을 '범죄'로 둔갑시킨 기획 수사
산별노조 지부인 간나마 지부는 강력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레미콘 운전기사의 열악한 처우를 크게 개선해왔다. 야마모토 사토루 집행위원(26년 경력 레미콘차량 기사)은 노조 가입 전 월 18일을 일하고 약 30만 엔을 받았으나, 가입 후에는 같은 일수를 일하고도 40만 엔 이상을 받게 됐으며 잔업수당 등 정당한 노동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조의 성장은 자본가에게 눈엣가시였다. 2015년 오사카 광역 레미콘 협동조합이 결성된 후, 사용자 측은 경찰과 결탁해 노조 파괴를 획책했다. 수사기관은 오래 전 일까지 들춰내며 억지로 사건을 조작했다.
경찰이 노조원을 상대로 내건 혐의 대다수가 상식 밖이었다. 간나마 지부 쿠보리 후미 변호사에 따르면, 조합원 요시다 오사무는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사측에 취업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요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또 다른 조합원인 마츠무라 켄이치는 사측이 노조 사무실에 폭력단을 대동하고 온 것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러 갔다가 '위력업무방해'와 '강요미수'로 구속됐다.
나카이 마사히토 변호사는 간사이 레미콘 노조 탄압 사건이 크게 시가현 사건과 교토 사건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시가현 사건의 경우, 노조가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안전대가 없거나 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정당한 '컴플라이언스(준법) 활동'을 수사기관이 '위력업무방해'와 '공갈'로 둔갑시켰다. 현장에서 위협적인 말로 협박한 일도 없었다.
자문 변호사에 따르면, 교토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이미 노사 합의로 원만히 해결된 과거 일을 들춰내서 사용자 측을 압박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게 만드는 등 사건을 조작하는 기획 수사를 벌였다고 한다.
이런 수사와 기소가 가능한 배경에는 노조활동 및 노동법에 대한 사법부의 무지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유카와 현 위원장(당시 부위원장)은 구류 판결을 내리는 판사에게 "노동조합법을 아느냐"고 묻자 판사가 명확하게 "모른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쿠보리 후미 변호사 역시 판사들이 노동법이나 노동조합법을 잘 모르고 사회적으로도 파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노조 활동을 과격한 폭력단 행위처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했다.
인권 사각지대, '인질사법'이 낳은 비극
일본 사법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인질사법(Hostage Justice)'은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할 경우 보석을 불허하고 접견을 제한하며 장기간 구금함으로써, 사실상 자백을 강요하고 방어권을 무력화하는 관행을 말한다.
유카와 위원장은 이 인질사법 관행으로 무려 644일 동안이나 구속됐다. 그는 체포 당시 경찰이 전화 한 통 없이 아픈 어머니를 이용해 자신을 집으로 유인하고, 15명의 형사를 동원해 수갑을 채웠다고 회고했다.
구금 기간 중 단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변호사 외에 누구와도 면회할 수 없는 '접견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는 콘크리트 바닥에 얇은 매트 하나만 깔린 유치장에서 약 420일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허리를 다치고 천식과 협심증 등에 시달렸다.
야마모토 사토루 위원 역시 102일간 구금됐다. 그는 매일 2~4시간씩 시가현 경찰 조사를 받으며 철저히 묵비권을 행사했다. 담당 수사관은 사건의 진상을 묻기보다는 끊임없이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노조를 험담하며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
이러한 가혹한 환경은 결국 일부 활동가에게서 굴복을 이끌어냈다. 2003년부터 노조 활동을 해온 오하쿠 씨는 2018년 체포돼 46일간 오사카 히가시나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완전 묵비를 지키려 했으나 수사관이 사적인 대화를 유도하며 틈을 파고들었고, 어린 자녀 등 가족과 단절된 극한의 불안감 속에서 그는 결국 무너졌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유죄를 인정해 버렸고, 판결을 받은 뒤 노조를 탈퇴했다.
유카와 위원장은 "일본의 기소 후 유죄율 99.9%는 인질사법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권력의 표적이 되면 결백한 사람조차 자백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잔혹성을 고발했다.
쿠보리 후미 변호사 역시 인질사법이 없었다면 억울하게 유죄를 인정하는 사람도, 조합을 떠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금자를 장기간 독방에 가두고 소통을 차단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노조 지도부를 부재 상태로 만들어 노조 약화를 노리는 수단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어긋난 사회의 방향타와 남은 투쟁
일본 사회에서 이토록 극심한 노동 탄압이 가능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인터뷰 참석자들은 우경화된 정치 환경과 시민 사회 분열을 꼽았다.
유카와 위원장은 아베 신조의 이데올로기를 이어받은 보수 정권하에서 일본이 다시 전쟁 가능한 국가로 회귀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일본 정권은 이를 위해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학교 교육에서 노동조합법과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일본 국민이 분열되고 인터넷 우경화에 쉽게 휩쓸리게 됐다고 통탄했다.
나카이 변호사 또한 평화와 반전 운동에 앞장선 간나마 지부 등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조직의 실천을 가로막으려는 정치권력의 지속적 탄압으로, 일본 시민사회의 힘이 과거에 비해 크게 약해진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빨리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죄를 인정하고 노조를 떠난 오하쿠 씨는 이후 사측인 오사카 광역 레미콘 협동조합에서 일하며 자본 측의 끔찍한 인권 유린 실태를 목격한 뒤 노동조합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고, 간나마 지부 부위원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2025년 극적으로 노조에 복귀했다.
현재 형사 재판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나카이 변호사에 따르면 가장 심하게 조작된 교토 사건 4건은 1심 재판부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으나 검찰이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시가현 사건은 최고재판소(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요시다 오사무 등 일부 조합원의 무죄는 확정됐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확실히 살려 우리도 인권을 중요시하고 헌법을 지키는 운동으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유카와 위원장의 말처럼, 간나마 지부 조합원은 여전히 자본과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16~17%까지 떨어진 일본 노조 조직률 속에서도, 이들은 일본 노동 운동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인질사법'이라는 야만적인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굳건한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글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