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팝니다: 인니 현직검사, 한국인 피고인에게 거액 뇌물 갈취
[편집자주] 이 기사는 인도네시아 반뜬(Banten)주 고등검찰청 소속 검사들이 한국인 피고인 등을 상대로 벌인 노골적 뇌물 갈취 사건을 다룬다. 정보통신법(UU ITE) 위반 혐의를 받게 된 피고인에게 현직 검사들은 "인도네시아에선 돈이 없으면 죄 없는 사람도 감옥에 간다"며 협박해 수차례에 걸쳐 거액을 뜯어냈다. 하지만 뇌물 전달 현장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녹화되면서, 현직 검사 3명 등이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원회(KPK)에 긴급체포됐다. 이 기사는 이 사건과 관련한 인도네시아 검찰 진술서,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원회 제출 증거자료, 제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2025년 3월 10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소재 한 회사 대회의실. 파란색 바띡(Batik,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지의 전통 염료 직물) 셔츠를 입은 남자가 테이블 너머로 노란색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감사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레디 줄카나인(Redy Zulkarnain), 현직 검사다. 반뜬주 고등검찰청에서 형사사법정보관리과장직을 맡고 있다.
검사가 받아든 노란 주머니는 묵직하다. 붉은색 10만 루피아권 지폐 7000장이 들어 있었다. 모두 7억 루피아, 우리 돈으로 약 6천만 원이다.
이 노란색 주머니를 건넨 사람은 한국인 김명국(가명) 씨. 인도네시아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그가 왜 현직 검사에게 거액의 돈주머니를 건넸을까.
"여기는 인도네시아다. 돈이 없으면 무죄가 되도록 손을 쓸 수가 없다.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모든 일에 돈이 필요하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감옥에 갈 것이다. 이곳에서는 죄가 없는 사람도 죄인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김 씨는 레디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회사 직원 나탈리아(가명) 씨와 최기훈(가명) 씨가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법(UU ITE)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후의 일이다. 협박인지 조언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나탈리아 씨와 최 씨는 퇴사 후에 이전 직장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전 직장 컴퓨터 및 전자 시스템에 접속해 유포해서는 안 되는 데이터를 무단 복사했다는 이유였다. 2023년 6월의 일이다. 이 사건은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25년 2월, 이 사건을 배당받은 리발도 발리니(Rivaldo Valini) 검사는 처음부터 돈을 요구했다. 감옥에 가지 않게 해주겠다며 2억 루피아(한화 약 1700만 원)를 달라고 했다. 김 씨는 직원을 지키기 위해 2025년 2월 12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2억 루피아를 리발도에게 건넸다.
파란 바띡 셔츠의 검사 레디는 리발도의 선배다. 리발도가 피고인 측에 직접 자기 선배 검사를 소개했다. 레디도 첫 만남 때부터 최 씨 등 두 사람을 무죄로 만들어 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 20억 루피아, 우리 돈으로 약 1억 7천만 원이다. 김 씨 등 피고인 측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레디는 ‘무죄 대가’를 낮춰 13억 루피아를 요구했다.
“1차 계약금으로 7억 루피아를 주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만들어 줄 것이며, 그렇게 되면 2심 재판 없이 대법원으로 직행, 대법원 재판 시작할 때 3억 루피아를 주고, 대법에서 최종 무죄 선고가 나오면 성공보수로 나머지 3억 루피아를 주는 조건으로 돈을 건네기로 했습니다.”
김 씨의 말이다. 레디는 자신이 직접 변호사를 소개해주면서 피고인 측이 지불하는 모든 자금은 변호사 비용, 검사와 판사를 관리하는 데 사용할 거라고 했다. 김씨 측은 이 말을 따랐다.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현직 검사 신분으로 그렇게 돈을 안 쓰면 두 사람 모두 감옥에 간다는 말에 충격과 동시에 공포심에 사로잡혀 저희끼리 상의한 후에 레디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김 씨는 레디와의 약속대로 2025년 3월 10일 회사 회의실에서 노란 주머니에 ‘1차 계약금’ 7억 루피아를 담아 건넸다. 이 자리에는 김 씨와 레디, 그리고 레디가 소개한 변호인 디딕(Didik), 통역사 안젤리카(가명), 나탈리아, 나탈리아의 남편, 최기훈 등 모두 7명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회동 장면은 2시간 38분 4초 분량 영상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회의실에 설치된 화상회의용 카메라를 켜둔 덕분이다. 이 영상은 재판에서 핵심 증거로 재생됐다.
“저희(피고인 측)는 이 영상을 찍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상대방은 몰랐습니다. 담당 판사님이 이 영상을 어떻게 만들게 됐냐고 물어서 직원에게 지시해서 녹화버튼을 누르게 했다고 하니 판사님이 엄지손가락을 확 치켜세우며 잘했다고 했습니다.”
현직 검사가 외국인 피고인에게 거액의 돈다발을 받은 사건은 인도네시아 반부패수사기구인 부패척결위원회(KPK)가 접수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25년 12월 17일, 레디를 포함해 현직 검사 3명, 변호사 1명, 통역사 1명 등 모두 9명이 부패척결위원회에 긴급체포됐다.
현직 검사 3명이 비리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은 인도네시아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반부패조사기구가 부패비리 검사를 체포하는 건 인도네시아에서는 새롭지 않지만, 검사가 한국인 피고인을 상대로 뇌물을 갈취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씨측은 왜 레디에게 돈을 건네고 8개월가량이나 지난 11월이 돼서야 이 사실을 부패척결위원회에 알렸을까. 첫 번째 검사 알도에게 2억 루피아, 두 번째 검사 레디에게 7억 루피아를 건넨 이후에도 금전 요구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레디는 재판 과정이 길어져 많은 경비가 소요되고 있고, 변호사 비용도 더 필요하니 남은 잔금 3억 루피아 중 일부를 달라고 했습니다.”
레디의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9월, 레디는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또 다른 사건 담당 검사 말다 크사트리아(Malda Ksatria)에게 5억 루피아(한화 약 4200만 원)를 주고 최대한 구형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두 피고인이 결국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25년 9월 30일 김 씨는 현금 5억 루피아를 제3의 검사 말다에게 건넸다.
2025년 3월 7억 루피아를 받은 레디는 계속해서 돈을 요구했다. 패턴은 똑같았다. 피고인 측 상황이 불리하니 돈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김 씨 측은 이렇게 6개월간 14억 루피아(한화 약 1억 2천만 원)를 3명의 검사에게 줬으나 사건은 답보 상태였다. 1심 무죄 구형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1심 구형만 여섯 차례 미뤄졌다.
김 씨는 검사와의 약속이 모두 무너졌다고 판단했다. 무죄 가능성은 낮아지는데 검사는 재차 돈을 요구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김 씨 측 변호인이 부패척결위원회(KPK) 신고를 권했다.
“2025년 11월 말 부패척결위원회와 저희가 1차로 비공식 미팅을 했습니다. 나탈리아와 최기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몇 시간 동안 만나면서 여러가지 증거도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했어요. 그리고 부패척결위원회 쪽에서 이거면 충분하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김 씨 등이 부패척결위원회 수사관을 접촉한 이후 갑자기 레디가 김 씨에게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2025년 11월 30일, 자카르타 외곽 한 공원에서 만난 레디는 김 씨 등에게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이전 직장인 원고 측에서 검사에게 돈을 준 후에 부패척결위원회에 신고를 한 것 같다면서, 관련해 대검찰청 감찰실에서 조사가 들어오면 레디 자신이 피고 측으로부터 받은 7억 루피아를 돌려줄 테니 관련해서는 이미 환불받았다고 진술하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돈을 받지 않은 것으로 입을 맞추자고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이다.
김 씨 등 피고인 측은 이 내용을 모두 부패척결위원회에 알렸다. 이후 실제로 김 씨 측에게 대검찰청 감찰실로부터 돈을 받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김 씨가 이 소식을 알리자 부패척결위원회는 레디가 피고인 측에 받은 돈을 돌려주는 현장에서 그를 체포하기로 했다.
2025년 12월 17일 오후 3시께, 대검찰청 감찰실에서 레디와 만난 김 씨 등은 이 자리에서 레디로부터 9억 4천만 루피아의 현금을 돌려 받았다. 현금을 세고 확인증을 쓰는 등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패척결위원회가 나섰다. 10명의 수사관이 긴급체포 형식으로 레디, 레디가 소개한 변호사 디딕, 그리고 통역으로 중간 알선을 한 안젤리카 등은 물론 피고인 측인 김 씨와 나탈리아 씨, 최기훈 씨까지 체포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리발도, 레디, 말다 등 현직 검사가 피고인을 상대로 뇌물을 갈취한 이 사건은 지난 4월 28일 재판에 부쳤다.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나탈리아 씨와 최기훈 씨는 징역 1년과 벌금 3억 루피아를 선고 받았고, 항소심 판결도 동일했다. 나탈리아 씨와 최기훈 씨는 구속 상태로 상고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취재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카피에디팅 조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