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위한 카슈미르의 금, 트럭, 그리고 가축 기부 행렬
By 캄란 유수프 (Kamran Yousuf)
인도령 카슈미르인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금붙이부터 생계 수단인 차량까지 개인의 재산을 이란과의 연대를 보여주는 집단적 행동으로 승화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대중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생계 수단부터 유품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기부행렬
잠무-카슈미르주의 여름 수도인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는 이슬람 단식 성월 라마단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이드(Eid) 예배가 끝난 후 한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펼친 손바닥에 금목걸이를 올려놓으며 "이것은 알라와 이란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받자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몇 시간 후, 도시의 다른 곳에서는 한 과부가 군중 앞에 섰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품으로 28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금붙이를 풀었다. "이것은 그의 기억입니다. 이것이 이란으로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침묵했고, 그녀는 기부 물품을 건넨 뒤 자리를 떠났다. 이러한 장면들은 이드 기간 내내 카슈미르 전역에서 반복되었다.
스리나가르, 부드가름(Budgam) 및 주변 지역 곳곳에 기부 캠프가 차려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을 가져와 기부했으며, 집단적인 연대감을 안고 발걸음을 돌렸다. 한 십 대 소년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캠프에 와서 열쇠를 넘겼으나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다. 유일한 생계 수단인 소형 트럭을 몰고 온 한 남성은 차량의 소유권을 양도했다. 여성들은 기부할 장신구를 착용한 채 집에서 곧장 찾아왔고, 구리 식기류가 꾸러미째 도착하는가 하면 텐트 근처에는 가축들이 매여 있었다. 상인들은 이드 기간에 번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돈과 물품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테헤란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인도 주재 이란 대사관은 이 캠페인을 인지하고 카슈미르인들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스리나가르에서 활동하는 사회 운동가 시라트 니사르(Seerat Nisar)는 "사람들은 흔히 카슈미르를 통제와 시민의 자유가 침해되는 곳으로 묘사한다"며, "이번 이드 기부 운동은 대중이 스스로 선택한 대의와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계층과 종파를 초월한 '집단적 원동력'
참여의 규모는 거리와 성소를 넘어섰다. 부드가름의 아가 문타지르 메흐디(Aga Muntazir Mehdi) 하원의원은 한 달 치 월급을 기부했으며, 시아파 성직자 임란 라자 안사리(Imran Raza Ansari)는 대중 집회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이 운동을 널리 알렸다.
스리나라글 도심 랄 초우크(Lal Chowk)의 한 상인은 자신의 수익 일부를 기부하며 이웃들도 동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은행원 샤이크 라술(Shaiq Rasool)은 학생, 상인,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 그는 "온라인에 퍼진 사진들이 더 많은 참여자를 끌어들였다"며, "눈에 보이는 관대함이 추가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집단적인 원동력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역사적·종교적 유대감
이러한 자발적이고 온정적인 지역사회의 캠페인은 깊은 역사적 유대감에서 비롯되었다. 카슈미르와 이란의 관계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의 수피(Sufi) 성자인 미르 사이이드 알리 하마다니(Mir Sayyid Ali Hamadani)는 1372년에서 1384년 사이 카슈미르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는 학자와 장인들을 데려와 이 지역의 종교적 관행과 공예 전통을 변화시켰으며, 그의 저술은 오늘날 카슈미르 가정에서 일상 예배의 일부로 남아있다. 시아파 이슬람 역시 이후 페르시아 종교 지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확산되었다.
시아파는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 인구의 약 10~15%를 차지하며, 대략 100만에서 15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주로 부드가름, 바람물라(Baramulla), 그리고 스리나가르 일부 지역에 거주한다. 스리나가르와 부드가름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기부 운동은 시아파 네트워크를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캠프에서는 수니파 기부자가 참가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해, 종교적 또는 인도주의적 노력 앞에서 종파적 차이를 내려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수니파 성직자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며 이번 캠페인이 사람들을 꼬리표나 분류를 넘어 하나로 모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부 물품들은 종파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그 종교적 의미는 그대로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이러한 지역사회 간의 유대를 더욱 강화시켰다. 카슈미르의 기관들은 종교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이란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성직자들은 이란 신학교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많은 카슈미르 가정이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시아파 성직자 하미드 알리(Hamid Ali)는 "이러한 네트워크는 국가 통제 밖에서 작동한다"며 "공식적인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종교적 학습, 문화 교류, 그리고 연대를 위한 창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스리나가르의 학자 라피크 바트(Rafiq Bhat)는 이란이 공식 외교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채널을 통해 신앙 및 배움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시위에서 기부로: 진화하는 연대의 방식
바트는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과거 카슈미르에 대해 언급하며 무슬림들에게 이 지역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며, "수년간 그 연설들을 지켜보며 외국의 지도자가 카슈미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은 지속적인 친밀감을 형성했다"고 회상했다.
하메네이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짧은 순방의 일환으로 이란의 국가 지도자에 오르기 전인 1980년대 초에 카슈미르를 방문했었다. 스리나가르에 약 48시간 머무는 동안, 그는 역사적인 자미아 마스지드(Jamia Masjid)에서 당시 미르와이즈(Mirwaiz)였던 몰비 모함마드 파루크(Molvi Mohammad Farooq)와 함께 금요 예배에 참석했으며, 시아파와 수니파 양 공동체의 통합과 참여를 강조하는 짧은 연설을 했다. 목격자들은 공항에 운집한 대규모 군중과 하즈라트발(Hazratbal) 성지, 자디발 이맘바라(Zadibal Imambara) 등 주요 종교 성지 방문을 기억하며, 현지 기록들은 이 방문이 지역의 종파 역사에서 상징적으로 중요했다고 묘사한다.
2026년 이드 며칠 전, 수니파를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스리나가르 거리를 행진하며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하메네이의 사망에 항의했다. 그들은 랄 초우크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바트는 "사람들은 유대감을 느꼈고 이에 대응하고 싶어 했다"며 "이전에는 그러한 대응이 시위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이제는 기부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항의 시위 대신 기부를 택한 것은 상황에 맞춰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범한 이들의 특별한 결단, 그리고 정치적 선언
자신의 트럭을 기부한 사다카트 알리 미르(Sadakat Ali Mir)는 이 결정을 가족과 상의하여 내렸다고 밝혔다. "이것은 내 매일의 생계 수단이다.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이를 기부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그는 말하며, 전능하신 분이 생계를 돌보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륜차를 기부한 빌랄 가지(Bilal Ghazi) 역시 가정에서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하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례는 모두 실제적인 필요와 책임 속에서 가족 내의 신중한 선택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찬드포라 부드가름(Chandpora Budgam)의 기부자 누스랏 바노(Nusrat Bano)는 마을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기부 행렬을 묘사했다. 사람들은 닭장 안의 닭, 헛간의 소, 금고에 보관된 결혼 예물 등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져왔다. 그녀는 기부할 물건을 몸에 착용한 채 집에서 곧장 걸어온 여성들을 가리키며 "기부 물품의 다양성은 경제적 계층을 뛰어넘는 참여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내놓음으로써, 자선을 공유된 종교 및 문화적 유대와 연결된 정치적 선언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지켜보며 누구의 강요 없이 스스로 결정하여 기부했다고 전했다. 한 주최 측 관계자는 이번 동원의 분권화된 성격과 "이것은 자선 활동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연대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알리는 메시지이기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기부의 양상은 군중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다카트 알리 미르는 조금 떨어져서 크고 작은 기부품을 들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기부하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슈미르인들은 이러한 작은 행동들을 통해 사려 깊은 조정을 보여주었으며, 개인의 선택을 하나 된 집단적 표현으로 탈바꿈시켰다.
글 캄란 유수프 (Kamran Yousuf)
인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저널리스트로, 인권, 정치, 환경 문제, 젠더 및 기술 분야를 다뤄온 10년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Kamran_yous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