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자금(Moonie Money)’, 네팔 정치를 뒤흔들다
유출된 ‘참어머니 보고서’, 통일교의 네팔 정계 관리와 대북 접촉 실태 드러내
서울 – 이슬기(DUNIA) / 카트만두 – 산타 가하 마가르(NEPALI TIMES)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네팔 정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두니아가 뉴스타파를 통해 입수한 통일교 유출 문서, 이른바 ‘참어머니 보고서(TM 특별보고)를 분석한 결과 통일교 측이 네팔 유력 정치인들을 포섭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실태를 확인했다. 또 네팔을 우회로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한 정황도 나왔다. 특히 이 문건은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학자 총재와 한국 정치권의 연관성까지 시사해 파장이 예상된다.
네팔 총선에 뿌려진 ‘통일교 자금’과 비례대표 거래
문건에 따르면 통일교는 네팔 주요 정당 및 정치인과 자금 지원 관련 내용을 주고받았다. 여기엔 마다브 쿠마르 네팔, K.P. 올리, 바부람 바타라이 등 전직 네팔 총리 3명이 포함돼있다. 네팔 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이하 UML)의 강력한 우군인 네팔 국회의원이자 가정당 총재 에크 나트 다칼은 2026년 3월 선거 및 향후 협력을 위해 K.P. 올리 네팔 공산당 총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유출 문건 속 서신들은 2017년 첫 연방 선거부터 2022년 총선 기간을 아우른다. 다칼과 용정식 통일교 아시아대륙 회장이 당시 통일교 세계본부 사무총장이던 윤영호에게 보낸 이 서신에는 선거 자금과 UML 지원을 위한 긴급 자금 요청이 담겼다.

2017년 11월 30일 자 보고서에서 다칼 측은 "자금 지원 요청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만, 최소 50만 달러(약 7억 3천만 원)가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윤영호에게 보냈다. 이어 "선거가 12월 7일로 임박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지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기 50만 달러는 전체 선거 비용으로 소진되었으며, 추가 50만 달러는 가정당의 캠페인과 주요 지도자 지원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또한 '네팔 가정당 유지비 및 2022년 선거 준비금' 명목으로 매달 2만 달러(약 3천만 원)를 추가 요청한 서신도 확인했다.
에크 나트 다칼은 자신의 정당과 UML의 제휴가 통일교 자금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그는 2017년 장관 취임 전 인터뷰에서 "우리 당은 통일교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과 연결되어있다"며 "네팔 가정당은 가족의 가치, 종교 간 대화와 화합을 장려하는 보수 정당이며, 올리 총리를 지지하는 11개 정당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윤영호나 한학자에게 보낸 또 다른 보고서에서 다칼은 2017년 UML 선거 캠페인이 "매우 성공적이며 압승이 확실시된다"고 보고했다. 다칼은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음에도 선거 자금 지원 대가인 듯 UML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여성 후보 할당제로 인해 내가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될 것이 확실하다"며 "마다브와 올리 전 총리가 나의 당선 가능성을 논의했고, 필요하다면 내 순번을 (5번에서) 1, 2번으로 조정해줄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썼다. 실제로 2017년 선거 후 UML은 연합 정권을 구성했고, 올리 총리는 다칼을 평화재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천일국’ 헌법의 야망과 ‘성주(Holy Wine)’ 논란
통일교가 네팔 정치에 개입한 이유는 단순한 의석 확보가 아니었다. 다칼은 문건을 통해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2020년까지 모든 국회의원을 교육하고 ‘천일국(Cheon Il Guk)’을 중심으로 한 헌법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라고 밝혔다. 천일국은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 세계를 구현한다는 통일교의 이상향을 뜻한다.
이러한 야망은 2018년 한학자 총재가 주재한 ‘아시아-태평양 서밋’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행사는 특정 종교 포교 행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네팔 정치권에서는 친통일교 정치인을 비하하는 ‘성주(Holy Wine)’라는 은어까지 유행했다. 그러나 통일교는 연합 정당 의원 150명 전원을 방콕으로 데려가 교리 교육을 할 계획을 세우는 등 집요하게 정치인 교육을 시도했다.
이 사건 이후 '성주(Holy Wine)'라는 단어는 네팔 정치권의 은어가 되어, K.P. 올리나 마다브 네팔, 에크 나트 다칼 같은 정치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반공 단체의 역설: 네팔을 경유한 ‘평양행’ 프로젝트
가장 주목할 점은 대표적 반공 단체인 통일교가 네팔의 공산당 지도자들을 매개로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문건은 “마다브 쿠마르 네팔 전 총리는 참부모님을 하나님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며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교는 당시 UML 의장이던 마다브 전 총리를 통해 방북을 추진했으나 초기에는 한국, 일본, 미국 대사 등의 압박을 받은 네팔 정부에 의해 저지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칼과 마다브 전 총리가 조용만 당시 네팔 주재 북한 대사를 만나 ‘한반도 통일’ 명분으로 다시 방북을 모의했다. 마다브 네팔은 김정은 면담을 요구했으나 북측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가 별도 정당을 창당한 뒤, 다칼이 배석한 자리에서 북한 대사를 만나 방북을 논의했다. 실제 2017년 네팔 대표단 11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는 통일교가 해외 정치인을 동원해 독자적인 대북 라인을 구축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통일교, ‘TM(참어머니)’ 보고서는 윤영호의 비공식 기록
두니아가 뉴스타파를 통해 입수한 3212페이지 분량의 통일교 내부 문건은 이 교단 2인자이던 윤영호 전 본부장이 한학자 총재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 과정에서 통일교 측 관계자는 문건의 일부 섹션을 직접 작성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통일교 측은 해당 문건이 “윤영호 전 본부장이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작성한 비공식 기록”이라며 “사실과 다른 내용이 추가되거나 수정됐다”고 내용을 부인했다. 에크 나트 다칼 역시 과거 인터뷰에서 “네팔 가정당은 올리 총리를 지지하는 정당 중 하나일 뿐”이라며 통일교 자금 연루 의혹을 부인했다.
네팔 가정당, 이번 의혹 제기는 비방 공세에 불과
고빈다 나트 미슈라 네팔 가정당 대변인은 "이번 의혹 제기는 우리 당을 겨냥한 불필요한 비방 공세에 불과하다. 네팔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는 정당을 깎아내리기 위해 늘 배후에 외세가 있다는 식의 프레임을 씌우곤 한다"고 네팔리타임스와 두니아에 밝혀왔다.
이어 그는 "에크 나트 다칼 총재는 이미 두 차례나 하원의원을 역임했으며, 가정당은 창당 초기부터 UML(네팔 공산당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도 그간의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것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 에크 나트 다칼은 유출된 보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취재진 질의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글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