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계속 불어날 때: 말레이시아 홍수 복원력은 어디까지?

물이 계속 불어날 때: 말레이시아 홍수 복원력은 어디까지?
(사진 : 구글크리에이티브커먼즈)

By Natalie Mun

귀를 찢을 듯한 천둥소리는 없었다. 그저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끈질긴 이슬비는 서서히 격렬한 폭우로 변했다. 칠흑 같은 밤, 물이 포효하며 기습적으로 논과 마을로 돌진했다. 아침이 되자 도로는 소용돌이치는 홍수 아래로 사라졌고, 들판 곳곳에 흩어져있던 농가는 가라앉는 작은 섬이 됐다. 한때 조용하던 논은 바다처럼 변했고, 달아날 곳은 남아있지 않았다.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막 밭에 씨를 뿌린 농부 디(Dee)가 말했다. 물이 불어나면서 자신의 논 전체가 천천히 홍수에 잠기는 것을 보며 가슴이 무너졌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디는 서둘러 가족을 홍수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인 구아 낭카(Guar Nangka)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대피시켜야 했다. 그 후 그는 혼자 마을로 돌아와, 물에 잠긴 소지품을 돌보기 위해 남기로 결정했다. 

디만이 아니다. 30대 남성부터 은퇴자까지 많은 사람이 고가도로 아래 캔버스 차양 밑에 몸을 피하고, 맹렬한 바람과 끊임없는 비를 견뎌야 했다. 그들은 임시 주방을 꾸리고,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드럼통을 남은 음식을 임시로 보관하는 저장고로 썼다. 작은 텐트로 임시 샤워장을 만들었다. 

“우리 대부분은 집에서 키우는 개, 고양이, 닭 같은 동물 때문에 구호 센터에 가지 않아요. 이렇게 돌보는 게 더 쉽죠.” 

디는 사람들과 교대로 근처에 주차된 차들을 지켜보며 말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잃을 여유가 없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길가에 세운 5톤 트럭은 살던 집이 홍수에 휩쓸려간 후 일가족 14명의 임시 거처가 됐다. 트럭 뒤편에는 소파, 얇은 매트리스, 몇 가지 가전제품, 작은 옷가지 묶음이 가득 차 일곱 아이가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었고, 아기가 기어다니거나 아장아장 걸을 공간도 거의 없었다. 이것은 홍수와 씨름하는 말레이시아 북부 주 가운데 가장 피해가 심한 곳도 아닌, 페를리스(Perlis)의 상황일 뿐이다.

‘페를리스를 강타한 미니 쓰나미 같았어요’

태국과 국경을 접한 페를리스 주는 심각한 홍수를 겪은 적이 거의 없었으나 이번 11월에 갑자기 이례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페를리스 주의 한 연구자는 홍수가 왕 무(Wang Mu)를 휩쓸고 파괴한 상황을 “마치 미니 쓰나미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말레이시아 기상청(MET Malaysia)은 11월 21일 처음으로 황색 경보를 발령한 후, 폭우가 계속되고 강해지자 11월 24일 적색 경보로 격상했다. 심지어 주(州)의 유일한 정부 병원도 침수돼 필수 서비스가 중단됐다. 이 정도 규모의 마지막 대규모 홍수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홍수 저감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이 상당했다. 그 뒤 홍수 터널이 건설됐다. 예방 조치로 댐 물을 미리 방류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강수 규모와 지속성은 여전히 페를리스 일부 지역에 심각한 홍수 피해를 초래했다.

더 많은 현장 인력, 더 많은 완화 자금

사실,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가 홍수에 상당히 잘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국가재난관리청(NADMA)은 홍수가 11월 27일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소방구조대, 경찰, 군대 소속 수색 및 구조 인력을 5,200명 이상 배치했다고 보고했다. 

피해를 입은 11개 주 가운데 8개 주가 경계 수준 적색(각각 5천 명 이상의 대피 인원)이었다는데 총 524개 대피소가 개설돼 6만 8천여 명의 이재민을 수용했다. 12월 2일 기준으로 30개 이상의 NGO와 290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됐다. 

NADMA는 NGO 및 대학 단체와 협력해 홍수 취약 지역에서 워크숍을 운영해 홍수 경보 발령 즉시 대피하는 방법과 장소를 가르친다. 

말레이시아의 2026년 예산은 43개 홍수 완화 프로젝트에 22억 링깃(약 6072억 원)을 배정해 국가 홍수 복원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기상학자인 아지잔 아부 사마(Azizan Abu Samah) 교수는 최근 홍수로 말레이시아에서 3명이 사망했지만 태국은 최소 276명, 인도네시아 아체는 961명 이상을 기록한 점을 강조했다.

페를리스가 큰 피해를 입은 이유?

말레이시아는 홍수에 비교적 잘 대비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페를리스는 이번에 큰 피해를 입었다. 말라카 해협에서 형성된 사이클론 센야르(Senyar)만으로 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지잔 교수는 기자에게 이례적인 홍수가 왕 켈리안(Wang Kelian) 유입에서 비롯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태국 사뚠(Satun)에서 넘어온 물이 티마 타소(Timah Tasoh) 댐 수위를 높인 것과 페를리스 상공 저기압과 관련한 지속적인 폭우가 결합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구원 샤밀 압드 라만(Syamil Abd Rahman)의 관찰도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모든 홍수 물이 똑같이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숲이 우거진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나무뿌리와 식물이 돌과 잔해 같은 더 큰 입자를 가두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약간 더 깨끗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티티 팅기(Titi Tinggi), 아라우(Arau), 캉가르(Kangar)와 같은 충적 저지대에서는 주로 강이 범람해 홍수가 발생했기 때문에 물이 비교적 더 맑아 보였다. 그러나 구아 켈람(Gua Kelam)에서 샤밀이 촬영한 영상에 보이는 홍수 물은 훨씬 더 탁한 갈색이었다. 이는 사뚠에서 지하 수로를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많은 미세한 진흙과 퇴적물을 운반했음을 시사한다. 

티마 타소 지역에서 방류된 물도 이와 동일한 원천과 연결돼 있다고 여겨지며, 이로 인해 지하와 경로를 따라 흡수한 퇴적물을 운반했기 때문에 더 탁하게 보인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샤밀은 이 가설을 수문지질학자들이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이 가설은 인접 국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홍수 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양국 간 공동 노력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MET 말레이시아의 모흐드 히샴 모흐드 아닙(Dr Mohd Hisham Mohd Anip) 국장은 11월 10일 성명에서 내년 3월까지 북동 몬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라니냐(La Niña)로 인해 5~7차례의 폭우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물에 잠긴 논에서 GDP 손실 위험까지

현지 언론은 페를리스 주 정부가 11월 말 홍수 피해액을 2억 3천만 링깃(약 634억 8천만 원)으로 추산하며, 2010년 홍수 당시 기록된 피해액 2억 링깃(약 552억원)보다 약간 높다고 보도했다. 무다 농업 개발청(MADA) 이사장인 이스마일 살레(Dr Ismail Salleh) 박사는 케다(Kedah)와 페를리스의 홍수로 약 11,657 ha의 논이 피해를 입었으며, 5천 5백여 명의 농부에게 영향을 미쳐 약 2천만 링깃(약 55억 2천만원)의 손실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페를리스로, 5,721 ha가 영향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홍수는 2030년까지 기후 관련 생산 손실의 주요 동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홍수 피해는 국가 GDP의 최대 4.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움을 약속했지만 느리게 진행될 때

말레이시아 정부는 등록된 피해 가구당 1,000링깃(약 27만6천 원)의 홍수 구호금을 제공한다. 그러나 등록 절차는 지난하다. NADMA는 전국 홍수 피해자에게 임시 구호 센터에서 사회복지국(Social Welfare Department)에 등록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세부 정보를 입력해 현금 지원이 신속하고 질서 있게 이뤄지도록 하라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가 집 가까이 있기 위해 고가도로 아래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대피소에 신고하지 않거나 디지털 기술이 부족한 고령 농부들이 구호 계획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말라야 대학교(Universiti Malaya) 회계학과 교수인 달리라와티 자이날(Dr Dalilawati Zainal) 박사는 공개 서한에서 홍수 피해 복구는 특히 저소득 가구에게 어렵다고 말했다. “파손 차량, 일당 중단으로 인한 소득 손실, 그리고 재정적 완충 장치 부족은 홍수 후의 어려움을 악화시킵니다. 이는 홍수 위험을 지속될 수 있는 문제이자 사회적 형평성 문제로 만듭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종이 위의 계획과 진흙 속의 삶 사이 간극 좁히기

MET 말레이시아 국장 모흐드 히샴은 지구 온난화가 이미 국가 기후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연간 총 강수량은 비슷하지만 비가 이제 더 극단적이고 폭발적인 형태로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짧은 기간의 극심한 폭우와 그에 따른 긴 가뭄은 나라를 홍수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서류상으로 볼 때, 말레이시아의 예보 및 대응 기기는 10년 전보다 더 강력해졌으며, 더 정확한 예측, 더 많은 대피소, 그리고 완화 프로젝트를 위해 약속한 수십억 링깃이 있다. 하지만 고가도로 아래에서 잠을 자는 농부들과 트럭 뒤편에 끼어 있는 가족들에게 예보와 대응의 성공 척도는 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이 얼마나 빨리 삶을 재건할 수 있는지다.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 압력이 가중됨에 따라, 정책과 현장 사람들 사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다음 홍수를 막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취재: Natalie Mun natalielhmun@gmail.com 

Nat은 쿠알라룸푸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언론인으로, 지역 및 국제 뉴스룸에서 일했으며, 말레이시아와 해당 지역 속보부터 심층적인 사회 및 환경 특집 기사 등을 취재 보도해왔음.

번역: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카피에디팅: 조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