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줄어도 폭력은 줄지 않았다, 데이터로 본 미얀마 쿠데타 5년
By 이슬기 (두니아 편집장, 기자)
2021년 2월 1일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 직후 한 달 1800건 가까이 쏟아지던 거리 시위는 진압 끝에 무장 저항으로 옮겼다. 군부는 공습과 방화, 체포로 맞섰다. 2026년 4월 민 아웅 흘라잉이 군 사령관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전투기 편대가 하나의 표적을 거듭 폭격하고, 온라인 게시물 하나로 사람들이 끌려가는 사이, 2026년 들어 반경 5km 안에서 폭력 사건을 겪은 인구는 약 2000만 명에 이르렀다. 기록되는 사건 수는 줄었지만 폭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모양을 바꿨을 뿐이다.
이 숫자들을 매주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이한규 씨는 국제 분쟁 데이터 기구 ACLED(Armed Conflict Location & Event Data)에서 미얀마를 비롯한 동아시아·동남아시아 8개국의 분쟁·시위 데이터를 총괄하는 리서치 매니저다. 저널리즘과 국제학을 공부하고 에세이집을 펴내던 그가 차가운 정량 데이터의 세계에 들어선 과정, 현지 맥락을 아는 리서처들이 75개 이상 언어로 된 수천 개 소스를 직접 읽고 검증하는 ACLED의 수집 방식, 그리고 중국·북한·라오스·베트남처럼 보도가 막힌 나라에서 '데이터의 침묵'을 읽어내는 방법을 물었다. 코딩할 때는 감정을 덜어내고 가치중립을 지키지만 일 밖에서는 참여연대 활동, 이주민센터 후원, 코리빙하우스 운영으로 시민적 실천을 이어가는 삶과, 동남아시아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이중의 세계화'에 대한 성찰도 들었다.
두니아와의 대담은 지난 8월 28일 서울에서 진행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사에는 그가 동남아시아 지역 연구자 네트워크 reSEArcher 주관으로 열린 ‘아시아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연대’ 세미나(8월 12일, 박종철센터)에서 발표한 자료 <비교 데이터로 본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미얀마 사례 — ACLED 데이터로 읽는 아시아 7개국> 수치와 도표를 함께 실었다.
다음은 두니아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두니아 독자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현재 ACLED에서 동아시아·동남아시아(East & Southeast Asia) 지역 리서치 매니저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 북한, 중국,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8개국의 분쟁, 시위, 전략적 전개 사건을 매주 코딩하고 검수하는 일을 총괄합니다. 입사 6년 차인데, 처음에는 '한국 정치 양극화에 유튜브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석사 논문을 계기로 한국 데이터 담당 리서처로 들어왔습니다. 입사 당시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부터 전광훈 목사 세력,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까지 진보와 보수 시위 주체의 복잡한 맥락을 파악하며 일을 시작했고, 이후 동남아시아를 맡게 돼 지금은 동남아시아와 한국, 북한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저널리즘(Communication & Culture)을 전공했고, 석사 과정에서는 독일(프라이부르크대)에서 두 학기, 아르헨티나(FLACSO)와 인도에서 한 학기씩 국제학(Global Studies)을 공부했습니다. 석사 동기들은 논문 주제가 모두 달랐어요. 필리핀 친구는 두테르테 정권의 '마약과의 전쟁' 속 미망인들의 삶을, 이집트 친구는 군부에 맞선 그래피티를 연구했지요. 국제학을 공부하고 나서 결국 다들 자기 나라 이야기를 쓰더라고요. 되돌아보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 역시 여행 에세이와 인터뷰집 등 세 권(<하루여행>, <프라하>, <아더스 50>)의 책을 내며 개인적 글쓰기를 이어 왔습니다. 일할 때는 가치중립을 지키기 위해 "명사와 동사로 세상을 기록"하지만, 일 밖에서는 "형용사와 부사로 세상을 바라보며" 감성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 합니다.
- 통계나 데이터 전공자가 아닌데, 분쟁 데이터 분야에 어떻게 입문했나요?
= 석사를 마칠 때까지 에세이집을 두 권 낼 만큼 글 쓰는 쪽에 있었고, 데이터 분석은 이 일이 처음이었습니다. 완전히 반대 길을 걸어온 셈이지요. 그런데 ACLED 데이터셋은 다른 정량 데이터와 크게 다릅니다. 저희도 다른 파트너 데이터를 보는데, 정말 숫자만 있는 데이터도 있어요. 유형마다 1번, 2번 번호를 매겨 나열하는 기구들도 있지만, ACLED는 사건의 구체적 정황과 맥락을 서술하는 '노트 칼럼(Note Column)'을 반드시 작성합니다.
양적 데이터를 모으더라도 서술과 상황 설명이 필요한 거죠. 그 지점이 저한테는 제일 맞는 것 같아요. 숫자만으로 세상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치 판단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정보를 모두 담으려면 결국 질적인 정보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ACLED에서는 분쟁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하나요?
= ACLED는 서섹스 대학교 교수인 클리오나 롤리(Clionadh Raleigh) 현 대표(CEO)가 박사학위 연구 프로젝트로 아프리카 분쟁 데이터셋을 구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20년 동아시아(2018년 자료부터 소급)와 미국으로 수집 범위를 넓히는 등 글로벌 대표 분쟁 데이터 기구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이 분야에서 가장 큰 데이터셋이고, 가장 많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머신러닝이나 AI 크롤링에 주력하는 다른 기구들과 달리, ACLED에서는 휴먼 리서처들이 75개 이상의 언어로 된 5000개 이상의 소스에서 정보를 직접 수집·검증합니다. 소스는 나라마다 다른데, 한국은 조선·중앙·동아일보부터 오마이뉴스까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봅니다. 미얀마는 군부의 입김이 닿는 일레븐 미디어도, 그 반대편에 있는 킷팃 미디어도 봅니다. 현지 파트너십으로 얻는 정보까지 포함해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모읍니다.
재원은 UN이 가장 큰 축입니다. 위기 대응 관련 지원이 절반 정도였고,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듯 UN이 운영하는 복합위험분석기금(CRAF'd)이 그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홍해나 예멘, 팔레스타인처럼 프로젝트 단위로 유럽의회나 유럽 각국 정부가 지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까지는 인도주의 영역에 집중됐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기구의 모토는 "Bring Clarity to Crisis(위기에 명료함을 더하다)"입니다. 최근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때도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정작 어디서 몇 명이 죽었는지, 분쟁이 어떻게 시작되고 확전됐는지 한 눈에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희 데이터셋은 그걸 하나하나 거르고 걸러 가장 보수적으로 정리합니다. 미얀마나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에서 서구 언론이 저희 데이터를 많이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32만 6천 건 이상의 사건을 데이터로 남겼고, 미디어·학술 인용 3만 5천 건, 다운로드 1만 4천 건을 기록했습니다. 흩어진 방대한 정보를 하나의 데이터셋으로 묶어 보여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ACLED는 학술적 정의를 측정 가능한 사건 유형으로 옮겨 데이터를 만든다. 국가폭력은 DeMeritt(2016)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물리적 폭력', Davenport(2007)의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제재로 개인·집단의 신념과 행동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행위'라는 개념에 기댄다. 사건은 무장충돌, 폭발·원거리 폭력, 민간인 대상 폭력, 시위, 폭동, 전략적 전개의 6개 상위 유형과 25개 하위 유형으로 나누고, 한 사건을 두 번 세지 않는다. 나라끼리 비교할 때는 이를 다시 정치폭력, 시위, 전략적 전개( 폭력은 아니지만 분쟁 맥락에서 중요한 사건)의 세 묶음으로 본다. 비폭력 시위대에 국가가 과잉 무력을 쓴 사건은 시위이자 국가폭력이지만, 그의 분석에서는 정치폭력으로 집계했다.
- 미디어 검열과 통제가 심한 국가(중국·북한·라오스·베트남)의 '데이터 공백'과 '데이터의 침묵'은 어떻게 해석하나요?
= ACLED는 웹사이트의 지식 베이스(Knowledge Base)에 나라별 데이터의 한계와 방법론을 공개하고, 데이터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라마다 다른 접근법을 씁니다. 미얀마에서는 체포 사건의 수집 기준(threshold)을 일반 기준인 25명에서 1명으로 낮춰, 한 사람이 끌려가도 정치적 억압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쿠데타 이후에는 체포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스에서 범죄 사건으로 확인되면 코딩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시위 방식부터 다릅니다. 한국은 기자회견을 많이 하지만 중국은 청원을 하러 가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비공식 구금시설에 갇히거나 행방불명된 경우를 '민간인 대상 폭력' 안의 '납치·강제실종(Abduction/forced disappearance)'으로 코딩합니다. 북한은 애초에 자료가 거의 없어서 미사일 시험, 로켓 발사, 미확인 발사체(Unidentified projectile)처럼 외부에서 관측할 수 있는 사건 위주로 코딩하고, 어떤 방식으로 코딩하는지를 지식 베이스에 모두 기록합니다.
그 공백을 줄이려고 계속 노력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중국은 공백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인데, 더우인이나 웨이보에 시위 관련 글이 올라오면 24~48시간 안에 삭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무력 분쟁 데이터 기구라 자금을 대는 기관들이 시위 데이터에는 관심이 크지 않아 예산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파트너를 찾는데, 중국 시위와 관련해서는 프리덤하우스가 만든 '차이나 디센트 모니터(China Dissent Monitor)'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쪽도 트럼프 정부의 예산 삭감 이후, 혹은 그 전부터 예산이 줄면서 데이터를 모으긴 해도 공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편집자 주: CDM은 2025년 미국 정부 지원 중단으로 몇 달간 중단됐다가 같은 해 6월 재개해 분기 보고서를 내고 있다.)
- 코딩에는 가치중립적 접근이나 감정 절제 등을 수반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 한국 시위 데이터를 보면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 가습기 살균제 등 오래된 이슈가 해결되지 않아 같은 시위가 반복됩니다. 시위 주최자도 늘 같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가닿지 못한 현실에 개인적 감정을 투영하면 너무 슬퍼서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매주 100명 이상 사망하고 누적 사망자가 10만 명에 달하는 미얀마 내전을 다룰 때는 감정 절제가 필수적입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저에게도 정치적 색채가 있다는 겁니다. 인권이나 노동 환경, 여성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니 노트 칼럼을 쓸 때 주관이 드러나려 할 때가 있거든요. 그걸 절제하는 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리뷰 과정에서도 언어를 엄격히 중립화합니다. 예를 들어 윤석열 계엄이나 성추행 사건에서 어떤 주장이 나왔다면 '주장된(alleged)'이라고 써야 하는데, 리서처가 이미 유죄라고 여겨 단정적으로 쓰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최대한 보수적으로 고칩니다. 미얀마 현지 리서처들이 군부를 '테러리스트'로 쓰면 그들에게는 그게 투쟁이니까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Tatmadaw/Myanmar Military'로 고칩니다. 테러리즘은 학계에서도, 저희 방법론에서도 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항군을 '혁명군(Revolutionary Force)'으로 쓰면 'Anti-coup armed group'으로 수정합니다. 물론 시민방위군(PDF)이 스스로 그 이름을 붙였다면 그대로 씁니다. 태국 남부 분리주의자는 'MMS(Malay Muslim Separatists)'로 표기합니다. 남중국해·대만 해협 문제에서는 중국 언론이 '순찰했다'고만 짧게 쓰는 반면 실질적인 위협을 느끼는 대만·필리핀 언론은 자국 입장을 담아 자세히 씁니다. 그런 표현도 최대한 절제해서 옮깁니다. 용어의 가치중립성이 깨지면 데이터셋 일관성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대신 일 밖에서 기여할 방법을 찾습니다. 한국 데이터를 보면 거의 모든 이슈에 참여연대가 있더라고요. 작은 시민단체가 혼자 기자회견을 하기 어려우면 참여연대와 함께하고요. 이 기구는 있어야겠다 싶어서 2021년부터 후원을 시작했고, 청년참여연대 활동도 하고 함께 시위에 나간 적도 있습니다. 개인 SNS에 올리더라도 기구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걸 밝힙니다. 프론티어 미얀마(Frontier Myanmar)도 구독·후원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쿠데타 이후에는 수원역 근처 수원이주민센터를 후원하기 시작했고 수원역 시위에도 함께했는데, 그 시위는 제가 설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후원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저는 사실 질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소준철 작가의 <가난의 문법>은 폐지 줍는 노인에 관한 책인데, 절반은 데이터고 절반은 소설이에요. 한 할머니의 하루를 소설로 따라가다가 챕터가 끝나면 바로 대한민국 통계가 이어지면서, 폐지 줍는 노인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떤 지원을 받는지 데이터로 보여 줍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그런 작업입니다. 질적인 이야기만 하면 결국 감정 호소에 그치고, 데이터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기 어렵거든요.
- 동남아시아 분쟁 데이터를 다루면서 경험하는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동남아시아에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체코에서 1년 일했고, 콜롬비아에 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6개월 있으면서 오히려 유럽과 남미에 관심이 많았어요. 석사 때 델리와 방콕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델리를 택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방콕을 '관광과 유흥의 도시'로 보는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하지만 현지 데이터를 분석하고 방콕을 오가며 지내면서, 미군 주둔 역사 속에서 유흥 산업이 형성된 맥락, 북동부 이산(Isan) 지역 여성들이 성착취로 내몰린 맥락, 그 가운데서도 시위에 나서는 젊은 층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태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배운 것도 있습니다. 아쉽지만 제가 사귀는 태국 친구들은 영어를 쓰는 출라롱꼰·탐마삿·마히돌·카셋삿대 출신,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예요. 전진당(2024년 해산 뒤 국민당으로 재출범)에서 일하는 친구도 꽤 있는데 다들 부잣집 자녀들이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강남 좌파' 같은 느낌이라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지금 한국 2030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이 그들 안에 있다는 것도 봤습니다. 베트남 역시 하노이와 호치민의 차이, 공안 통제, 베트남 전쟁 이후의 경제·정치 권력 구조를 깊이 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시선도 바뀌었습니다. 저는 보안 문제로 미얀마에 갈 수 없는데, 제 밑에 13명이 있고 그중 미얀마 리서처가 6명, 중국과 태국 리서처가 1명씩입니다. 같이 일하다 보니 동남아시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어요. 수원에서 4년째 운영하는 코리빙하우스에도 미국, 프랑스, 태국, 인도네시아, 앙골라 등 다양한 친구들이 살다 갔는데, 저는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친구들이 훨씬 잘 맞았습니다. 정서도 비슷하고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지점도 많아서인지 오만하지도 무지하지도 않았거든요. 지난해 낸 인터뷰집 <아더스 50>에서 만난 50명 가운데 대여섯 명이 동남아시아 친구였는데,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친구이기도 한 임명묵 작가가 2019년 칼럼에서 쓴 '이중의 세계화' 개념에 깊이 공감합니다. 한국 사회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처럼 서구 백인 중심의 TV 예능이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적 세계화만 소비하려 합니다. 반면 안산·수원·조치원의 공장과 농촌 현장에서 이미 일손 대부분을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는 실제 '다큐멘터리적 세계화'는 외면하거나 우리가 제1세계의 일원인 양 우월감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간 주인공에게 인도네시아 남자가 '호주에 오는 동남아시아 사람은 다 엘리트고 부자인데,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한국인들이 왜 우리를 무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나라를 위계로 보는 것도,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아시아의 이웃들을 위계나 편견 없이 대등하고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가 세미나에서 발표한 7개국 비교는 나라마다 정치가 데이터에 어떻게 새겨지는지 보여 준다. 2018년 1월부터 2026년 7월까지 한국에서 기록된 48,470건 가운데 99.7%가 시위였고 정치폭력은 0.1%에 그쳤다. 103,120건으로 지역 최대 규모였고, 정치폭력이 63.6%, 시위는 15.8%였다. 중국(18,308건)은 시위가 75.9%, 태국(5854건)은 53.7%, 캄보디아(751건)는 81.6%, 베트남(176건)은 64.8%였고, 라오스(22건)는 정치폭력이 절반을 차지했다.
그는 "체제 유형이 폭력의 총량보다 형태를 규정한다"고 정리했다. EIU 7.75점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 한국에서는 평화적 시위가, 0.96점의 '권위주의' 미얀마에서는 물리적 폭력이 두드러진다. ACLED는 시위를 '3인 이상이 대면으로 모인 공개 비폭력 집회'로 엄격히 정의해, 상징 행위나 집회 없는 파업, 1인 시위, 온라인 캠페인은 집계하지 않는다.


- 쿠데타 이후 5년의 미얀마를 데이터로 지켜봤는데, 이를 책이나 글로 풀어낼 생각은 없나요?
= 고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미얀마를 전공하거나 계속 공부해 온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만 봐 온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8개국을 맡다 보니 태국·캄보디아 분쟁이 터지면 그쪽을 파고들어야 하고, 한미 연합훈련이 줄면 북한을, 백지 시위가 있을 땐 중국을 공부해야 하거든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데 과연 그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외부자의 목소리 문제입니다. 국제학을 공부할 때도 서구 친구들이 인도나 케이프타운에 6개월 다녀와서 그 지역에 관한 글을 쓰고 연구 과제를 따는 걸 보며, 현지인들이 해야 할 이야기를 뺏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제 리서처 한 명이 해외 대학의 미얀마 컨퍼런스 패널이 모두 외국인으로 채워진 걸 비판한 글을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나는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글을 쓰거나 활동을 하게 된다면, 한국인 연구자이자 외부자의 시선이라는 걸 분명히 밝히고 시작할 것 같습니다.
- 미얀마 쿠데타 5년간의 데이터 추이와, 2026년 최신 군 지도부 체제에서 나타나는 폭력 양상의 변화는 어떠한가요?
= 2021년 2월 1일 쿠데타는 데이터상의 거대한 변곡점이었습니다. 2020년 1,575건이던 연간 사건 수가 2021년 18,916건으로 12배 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시위가 확실히 줄었다는 점입니다. 쿠데타 직후 가장 왕성했던 시민불복종운동(CDM) 관련 시위가 줄고, 저항이 무장 분쟁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어요. 시위는 쿠데타 직후인 2021년 2월 초가 정점이었는데, 2월 7일에서 12일 사이에는 하루 100건 안팎이 기록됐습니다. 3월 말부터 급격히 줄어 4월에는 3월의 절반 수준이 됐고, 5월에 잠시 반등한 뒤 완만하게 줄어 지금은 한 달에 수십 건 수준입니다. 이는 저항의 소멸이 아니라 시민방위군(PDF)과 국민통합정부(NUG)가 결성되면서 4~5월 무렵부터 무장 투쟁으로 저항의 형태가 옮겨 갔음을 의미합니다. 시위의 성격도 달라져서, 초기에는 진압이 동반된 시위가 많았는데 2022년부터는 그런 시위가 거의 사라졌고, 시위가 일어나는 지역도 사가잉 중심으로 좁혀졌습니다.

쿠데타 이후 누적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무력 분쟁의 양상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가장 많은 건 무장충돌이지만, 최근 공습과 드론 사건이 많아지면서 사람을 살상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 어쩌면 AI가 되는 흐름이 보입니다. 이건 미얀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드론전, 그리고 중국의 역할과도 연결돼 있다는 걸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군부가 공습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건 기존 전략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두 가지 맥락이 있는데, 하나는 1027 작전(2023년 10월 27일 소수민족 무장단체 '3형제동맹(Three Brotherhood Alliance)'이 샨주 북부에서 시작한 대규모 합동 공세로, 군부가 크게 패했다) 이후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NUG·PDF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략 전환입니다. 다른 하나는 2024년 2월 시행을 선언한 징병제입니다. 병력을 채우면서 전략적 우위를 가져가려고 형태를 바꾼 거죠. 여기에 중국의 역할이 큽니다. 소수민족 저항군은 중국의 협조 없이는 드론 같은 장비를 만들기 어려운데, 군부는 중국 정부와 연계돼 있습니다. 실제로 전략 거점인 마을과 타운십들이 중국 정부와 소수민족 저항군, 군부의 3자 협의를 거쳐 군부에 되돌아간 경우가 계속 있었습니다. 접경지대 중국 자본의 이권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027 작전 이후 저항군이 우위에 섰다, 전쟁이 끝날 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저희 팀 분석가들은 지금의 교착 상태가 계속될 거라고 봅니다. 군부는 공습과 드론으로 우위를 점하려 하겠지만, 최근 군부가 되찾은 영토도 공습이 아니라 중국과의 연계 덕분이어서,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판세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저도 그 분석에 동의합니다. 그 사이 군부는 정당성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민아웅흘라잉이 태국과 중국, 인도를 방문하고, 아웅산 수치가 적십자와 면담하는 사진을 공개한 것도 그런 제스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 디지털 감시와 억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데이터 수집 방식에도 변화가 있나요?
= 주기적으로 하는 고민입니다. 쿠데타 이후 수많은 언론이 문을 닫거나 본부를 태국 등 외국으로 옮겼고, 결국 페이스북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정보 싸움을 이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군부도 똑같이 페이스북에서 일레븐 미디어 같은 매체로 선전을 퍼뜨리거든요. 그래서 그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고 사실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골라 코딩하려고 합니다. 미얀마는 버마어 하나만 쓰는 나라가 아니니 친어, 샨어 등 다른 언어 소스도 분석하려 하고, 미얀마 피스 모니터(MPM) 같은 현지 파트너와도 협력합니다. 파트너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받아들입니다. 라카인 쪽에서는 신원 보호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는 현지 단체들로부터도 자료를 받아 로힝야 관련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로힝야 코보르(Rohingya Khobor)와 AK 미디어라는 소스 두 개를 추가했는데, 아라칸군에 대한 입장이 정반대예요.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은 아라칸군이 로힝야를 죽였다고, 다른 쪽은 군부가 죽였다고 보도합니다. 이렇게 행위자를 두고 보도가 엇갈리면 가해자는 '미확인 무장 집단'으로 코딩하고, 노트 칼럼에 양쪽 주장을 모두 적습니다. 그런 방법론은 지식 베이스에 공개합니다.
- '미얀마 모델'을 통해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데이터 읽기와 연대의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한국에서는 시위에 대한 국가의 진압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2018년 이후 시위 약 4만 8천 건 중 과잉진압이 6건에 불과했고, 2024년 12월 계엄 직후에도 시위가 월 450건에서 835건으로 늘어나며 서울 집중도가 40%에서 25%로 낮아질 만큼 전국으로 평화롭게 확산되었습니다. 반면 미얀마는 쿠데타 직전 한 달 36건이던 시위가 다음 달 1,800건 안팎으로 늘었고, 이후 진압을 거쳐 무장 충돌로 옮겨갔습니다. 비슷한 계기 앞에서 두 사회는 전혀 다른 길을 간 겁니다.
'미얀마 모델'은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부 쿠데타 사례 가운데 여전히 내전이 진행 중인 곳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사례인 동시에, 누가·무엇을·어디서·언제라는 동일한 규칙으로 기록되어 다른 나라와 같은 눈금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다른 쿠데타 사례들을 같은 눈금 위에 올려, 다른 나라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내전으로 가지 않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억압이 강한 곳일수록 기록 자체가 남지 않는다는 점, 사례마다 데이터의 수집 시점과 밀도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비교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선택 가운데 미얀마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려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연대를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미얀마 소식은 뉴스에서 사건 하나하나로 흘러가고 금방 잊힙니다. 데이터는 그 사건들을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라는 같은 기준으로 묶어 전체 그림을 보게 해 줍니다. 범람하는 뉴스 속에서 이 현실을 놓치지 않으려면 데이터를 함께 읽는 방식이 필요하고, 그 위에서 한국 사회가 어떤 연대를 할 수 있을지 같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취재·인터뷰 이슬기 (두니아 편집장, 기자) – skidolma@thedunia.org
편집 김용진
카피 에디팅 조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