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주모자가 대통령이 된 미얀마, 현장 취재 14일의 기록

쿠데타 주모자가 대통령이 된 미얀마, 현장 취재 14일의 기록

By 두니아 기자

양곤, 만달레이 – 놀라운 다양성. 지난 5월 중순, 처음 방문한 양곤 도심에서 떠올린 말이다.

불교 국가로 알려진 미얀마. 옛 수도인 양곤시청 주위는 이슬람 사원, 침례교회, 불교 사원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과 긴 머리를 늘어뜨린 힌두교도 여성이 내 옆을 지나갔다. 둘 다 얼굴에 타나카(Thanakha, 나무껍질을 갈아 만든 노란색 가루.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물에 개어 피부에 바른다)를 발랐다. 외양은 달랐지만 이들에게선 똑같이 타나카 향이 났다.

▲양곤 시내 거리에서 꽃을 사고 파는 시민. (사진: 두니아)

피부가 밝은 사람, 어두운 사람, 입담배 ‘빤’을 씹는 남자와 궐련 담배를 문 여자가 모두 한 거리에서 서로를 스쳐갔다. 해가 진 뒤 편의점에 들러 10종에 가까운 미얀마 맥주 중 하나를 골라 숙소에 돌아가면, 옆 건물인 마드라사(Madrasa, 전통적으로 쿠란·이슬람법·신학 등을 가르치는 이슬람 교육기관)에서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dhan, 이슬람교에서 기도소리를 알리는 부름)이 울려 퍼졌다. 

전력 공급 문제로 에어컨과 전등이 꺼진 8인용 도미토리 방에 혼자 앉아, 시원한 ‘미얀마 맥주’로 35도 넘는 더위를 식히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난 20년의 아시아 여행 경험을 통틀어 미얀마만큼 아시아적 다양성이 모여 있는 곳이 있을까.

2021년 2월 1일, 미얀마 행정수도 녜피도의 아침을 깨운 군용 탱크 행렬은 이 놀랍도록 다채로운 문화와 언어, 종교를 자랑하는 사회를 공포와 억압으로 밀어 넣었다.

▲2021년 2월 1일 아침 미얀마 수도 녜피도에서 에어로빅을 하던 여성 뒤로 군용차량이 연이어 지나가고 있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의 서막을 알린 영상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사진: 유튜브 영상 캡처)

“민 아웅 흘라잉은 대통령이 됐지만 그는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다.”

2021년 2월 1일 쿠데타 후 시민불복종운동(CDM, Civil Disobedience Movement)에 참여한 간호사 산산(가명, 43)은 올해 초 치른 총선 결과 새로 취임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 민 아웅 흘라잉은 평화적 선거에 불복하고 군부 쿠데타를 주도해 미얀마 시민을 납치, 체포하고 살해한 반역자일 뿐이다.

민 아웅 흘라잉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한 표면적 이유는 2020년 11월 총선 '부정선거' 의혹이다.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하 NLD)이 압승을 거두자, 군부와 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유권자 명부 조작 등 대규모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 선거감시단과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쿠데타 이면에는 군부의 위기감이 있었다. 미얀마 헌법상 군부는 의회 의석의 25%를 자동 배정받고 국방·내무·국경 3개 핵심 부처를 장악해 왔다. 그러나 2020년 총선 결과는 이 같은 군부의 정치적 기득권을 장기적으로 위협할 만한 수준이었다. 결국 2021년 2월 1일, 새 의회 개원을 몇 시간 앞두고 민 아웅 흘라잉의 군부는 아웅산수찌를 비롯한 정부 인사들을 구금하며 전권을 장악했다. 

▲2021년 2월 1일 쿠데타 직후 이곳 술레파고다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 중 많은 이가 지금은 수배 상태로 숨어 지내거나 인세인 감옥에 수감됐다. (사진: 두니아)

“민 아웅 흘라잉과 군인들이 빨리 죽길 바란다.”

군부 쿠데타 이후 양곤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민중방위군(PDF, People Defence Force) 활동을 지원하다가 군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판다(가명, 42)는 저주의 말을 속삭였다. 국가전복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인세인 교도소에서 1년 이상 복역한 뒤 막 석방된 판다는 주변 시선을 극도로 불안해했다. 대화 내내 나와 현지인 통역 곁에 바짝 붙어 귓속말을 했다. 

미얀마 중부 자가잉(Sagaing)주에 사는 재봉사 표표(가명, 34)는 쿠데타 이후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민 아웅 흘라잉 얼굴이 자꾸 눈에 띄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 2월 1일 쿠데타의 기억을 묻자 어제 일처럼 눈물을 쏟아내던 표표는 민 아웅 흘라잉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표표가 사는 자가잉주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민 아웅 흘라잉 군부의 민가 공습 탓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표표와 가족은 고향 마을을 떠나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다.

자가잉주를 비롯한 미얀마 중북부 지역이 군부의 주요 공습 대상이 된 배경에는 2021년 쿠데타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무장저항이 있다. 쿠데타 직후 결성한 민중방위군(PDF)은 기존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해 각지에서 군부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고, 자가잉주는 그 저항이 가장 활발한 거점 중 하나로 꼽힌다. 지상군만으로 이를 진압하는 데 한계를 느낀 군부는 지난해 7월부터 헬기와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 그리고 마을 전체를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으로 전환했다. 저항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 공습은 학교, 사원, 민가 등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이는 저항 세력에 대한 보복이자 지역 주민들이 무장 저항조직에 은신처나 물자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공포감을 심어 협력 기반 자체를 파괴하려는 목적이 크다.

“새 대통령이 싫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라서.”

만달레이에서 만난 오토바이 택시 기사 꼬꼬(가명, 55)는 2021년 쿠데타 이후 저항 시위가 크게 일어났던 자가잉주 몽유와에 자주 방문했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 됐다고 했다. 군이 몽유와로 들어가는 외부인을 철저히 막고 있는 탓이다. 공무원 가족은 투표가 의무라 첫째 아들이 경찰인 그는 올해 초 선거에 참여했다. 

매번 같은 당에 투표하지만 어느 당에 했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 만달레이힐 같은 관광지에서도 사진 찍어 준다고 서 있는 사람들 다 군부 명령 받고 감시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늘 말을 조심해야 해요. 나야 아들이 경찰이니 괜찮지만.” 그가 속삭였다.

▲만달레이와 자가잉주를 연결하는 다리. 지난해 일어난 미얀마 중부 대지진으로 무너졌다.(사진: 두니아)

자가잉주 휴대전화 충전기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수수(가명, 32)는 민 아웅 흘라잉이 대통령이 되려고 치르는 선거라는 걸 알고 아예 투표소에 가지도 않았다. 일하던 공장 산업단지에서 투표를 꼭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공지를 했지만 결과가 정해진 선거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양곤에 사는 쬬(가명)는 “한국이 미얀마에 공적개발자금과 재난구호기금을 보내오고 있는데 많은 경우 그 돈이 군부 집권을 연장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민 아웅 흘라잉 정부와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인터넷 매체 ‘미얀마 노동뉴스(Myanmar Labour News)’ 기자로 일하는 그는 한국 사업가들이 미얀마에 투자할 때 미얀마 노동법을 꼭 지켜달라고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2021년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2025년 12월 28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3차례로 나눠 총선을 실시했다. 2025년 8월 18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UEC)가 다단계 총선 계획을 발표했으나 이로부터 두 달 뒤인 10월 15일 민 아웅 흘라잉 당시 미얀마군총사령관(2011~2026)은 내전 중이므로 전국 모든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330개 타운십(미얀마 행정단위) 중 65~67개 지역은 선거에서 배제됐다. 군부는 등록 유권자 2,422만명 중 50% 이상이 투표했다고 발표했다. 투표가 아예 이뤄지지 않은 지역까지 감안하면 실질 참여율은 41~44%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곤 시민공원을 방문한 청소년 해군 행렬. 2021년 쿠데타 이후 사관학교 입학생이 급감하자, 미얀마 군사 정부는 2023년부터 전국 공군·해군 기지에서 여름철 해양·항공 청소년 훈련 과정을 확대했다. (사진: 두니아)

그러나 이 선거는 형식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시민 참정권을 보장한 민주적 선거였다고 보기 어렵다. 선거는 미얀마 대중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정당,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23년 군사정부에서의 재등록을 거부해 강제로 해산당한 상태에서 치러졌다. 군부 정치조직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상·하원 모두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통합단결발전당이 다수를 차지한 하원은 4월 3일 민 아웅 흘라잉을 대통령 후보로 추천했고, 3월 29일 52년 만에 군에서 전역한 그는 기다렸다는 듯 지난 4월 10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군복을 벗은 민 아웅 흘라잉 등이 정치와 행정을 장악한 미얀마에서 보낸 2주간의 취재는 잠입과 비밀 접선의 연속이었다. 시가지와 각종 랜드마크, 고속도로에는 장전된 총을 든 군인들이 경계근무와 검문을 하고, 거리와 식당, 카페에는 여러 개의 CCTV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양곤-만달레이 고속도로를 통행할 때 군과 경찰 검문소를 만나면 모든 차량이 반드시 멈춰서 승객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 이런 검문소를 지날 때는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다. (사진: 두니아)

양곤을 통해 입국해 미얀마 정치 상황과 분쟁 상황을 취재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한 주에서 다른 주로 이동하는 데 제약이 많고, 시민사회 활동가와 정치인, 학자 등은 대개 타이 북부 치앙마이나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지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겨우 만난 취재원들은 인터뷰 장소를 1시간에 한 번씩 옮기길 원했다. 그나마도 인터뷰를 마친 후 이름은 물론 나이, 발언 내용 등 신원을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난 5월에 현장 취재한 기사가 9월이 돼서야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부터 3주간 양곤, 만달레이를 거쳐 2주간 미얀마를 취재한 기사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한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지만, 나이와 발언 내용은 본인 동의를 거쳐 수정하지 않았다.

▶쿠데타 반대 시위의 대가, 2021년 이후 숨어다니는 사람들

▶군부-반군 격전지, 사가잉 주민들의 삶

▶인터뷰 – 미얀마 노동뉴스


취재 두니아 contact@thedunia.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