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서 '호텔 셀프 감금' 원격 조종… 200억대 스캠 범죄 전말
[편집자 주] 지난 1월 5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고급 주택가를 현지 경찰과 한국 경찰이 급습해 한국인 사이버스캠 조직원 26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한국인 피해자 165명에게 267억 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두니아와 메콩 인디펜던트는 이 조직이 범죄에 이용한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이 문건에는 피해자의 인적 사항과 자산 현황, 휴대폰 기종, 연가 일수까지 적혀 있다. 두니아는 이 문건에 나온 피해자 김서연 씨(가명)와 접촉해 악몽 같던 이른바 ‘셀프 감금’ 피해 상황을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보이스피싱의 덫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들뜬 분위기는 발신번호가 “112”라고 찍힌 전화 한 통으로 산산조각 났다. 자신을 법원 관계자라고 소개한 중년 남성의 전화였다. 김서연 씨 은행 계좌가 범죄 과정에서 대포통장으로 사용됐으니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의 저였다면 그냥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하고 넘겼을 텐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굉장히 한국말을 잘했고 홀린 듯이 듣다보니 이 사람이 진짜 법원에서 전화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사이트에 제 앞으로 피해 사실이 담겨 있는 등기나 공문이 있으니까 확인해보라고 해서 보내준 링크로 들어갔고요.”
범인은 김 씨에게 지금 협조하지 않으면 곧바로 구속된다고 겁을 주면서 특정 사이트에 접속해 공문을 확인하게 유도했다. 김 씨는 이 사이트에 들어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다.
곧이어 ‘최진철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김 씨에게 개인정보와 자산 정보 등을 상세히 묻고 파악했다. 이 사이버스캠 조직은 이런 정보를 자신들이 범행에 사용할 문서 양식에 상세하게 기재했다. 바로 두니아가 캄보디아 한국인 스캠 조직 거처에서 입수한 문건이다. (관련기사: 두니아, 캄보디아 스캠 조직 내부문건 입수… ‘연가 일수’까지 파악)



2시간여 통화에서 개인정보와 자산 정보를 낱낱이 파악한 검사 사칭 조직원은 “유치장에 가서 조사를 받을지, 아니면 수사기관을 오가면서 약식 조사를 받을지” 선택하라고 김 씨를 압박했다. 직장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김 씨는 유치장에 가는 대신 매일 수사기관을 오가겠다고 했다.
“2주간 그렇게 갇혀 있었어요”... 호텔방에서 실시간 보고
그러자 조직은 김 씨에게 수사 중 외부와 접촉하지 않도록 격리해야 한다며 ‘보호 관찰’ 명목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라고 종용했다.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휴대폰 교체였다. 기존에 김 씨가 사용하던 아이폰은 자신들이 지시하는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 씨는 조직 지시에 따라 중고 안드로이드 폰을 구매한 뒤, 조직원들과 연락을 이어갔다. 그들의 지시대로 김씨는 구글 앱스토어에서 ‘팀뷰어(TeamViewer)’라는 앱을 검색해 안드로이드 폰에 깔았다. 통신기기에 원격으로 접속해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앱이었다.

사이버스캠 조직원은 이 팀뷰어 앱을 이용해 ‘시티즌 코난’이라는, 경찰청 피싱방지앱처럼 보이는 앱을 김 씨의 휴대전화에 원격으로 설치했다. 그러나 이는 경찰청이 개발 배포한 앱이 아니라 설치 즉시 사용자 휴대전화에 담긴 개인정보와 금융 정보를 탈취하는 악성 앱이었다.

이어 스캠 조직원은 김 씨에게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격리할 호텔을 지정해줬다. 해당 호텔에 직접 예약을 하고 현장에서 숙박비를 결제한 뒤 체크인하라고 했다. 비용은 조사가 끝난 뒤 모두 검찰에서 처리한다고 속였다. 이후 격리하면서 쓴 음식 배달비와 호텔 숙박비 등은 모두 김 씨가 자비 결제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모텔급 호텔과 의정부의 한 호텔이 김 씨가 그들이 지시한대로 머물러야 했던 ‘임시 보호관찰소’였다.
“도착하자마자 호텔방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했어요. 그리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깔라고 한 앱으로 위치추적이 됐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왜 당시에 즉시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리지 않았냐고 김 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스캠 조직원들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리는 것은 ‘수사 방해’라며 수사 과정에선 아무하고도 연락해서는 안 된다고 압박해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감시는 철저했고 수법은 교묘했다. 이들이 지정해준 호텔에 들어가자 자신을 금융감독원 소속 공무원 곽범준이라고 칭한 또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 씨는 이름을 확인해봤다. 실제 금융감독원 공무원에 그런 이름이 있었다. 이 조직원은 김 씨에게 매시간 전화를 걸어 보고를 받으며 감시했다. 걸려온 전화도 금감원 번호와 같았다. 계속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가 와서 특이사항이 있는지 보고를 하라고 해서 보고를 했는데, 그때마다 걸려온 전화번호는 금융감독원 대표번호였어요. 그래서 더 믿었던 것 같아요.”
직장에는 가족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 거짓말도 조직원이 시켰다.
“어느 날까지 수사 때문에 회사에 갈 수가 없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냐라고 물어왔어요. 아니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이 이런 방법도 있지 않겠냐 하며 가족이 아프다는 말을 하라고 했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 빌려서 돈을 보내라고 했다”...총 2억 7천만 원 갈취
스캠 조직은 김 씨를 이렇게 호텔에 ‘셀프 감금’시키고 본격적으로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불법 추가 대출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김 씨 이름으로 금융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출을 다 받아놔야 한다고 했다.
“제 명의로 모든 대출을 다 받아야만 범인이 제 앞으로 또 다른 불법 대출을 받지 않을 거라는 명목하에 제 이름으로 다시 제가 직접 대출을 받을 수 있게 압박을 했어요. 그래서 거의 7천만 원 정도 대출을 받았고, 다 이체를 했고요.”
보유하고 있던 주식도 팔아서 보냈다. 바이낸스 코인은 12월 30일과 1월 1일, 그들이 정한 코인 지갑 주소로 보내도록 했다. 4천여만 원이 이렇게 추가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스캠 조직은 김 씨에게 1억 8천만 원 규모의 또 다른 대포통장이 발견되었다며 ‘공탁금’을 요구했다. 이미 모든 자산이 바닥난 김 씨에게 그들은 또 다른 방법을 종용했다.
“엄마한테 빌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저는 거의 9천만 원 정도의 돈을 빌렸고, 그러고 나서 1월 5일에 마지막 송금을 했습니다.”
이렇게 김 씨가 캄보디아 한인 사이버스캠 조직에게 뜯긴 돈은 2억 7천만 원에 달한다.
“이런 이체 관련 대화는 전화가 아니라 모두 텔레그램으로 소통했어요. 그리고 돈을 더이상 보낼 수 없을 만큼 다 보낸 후에는 거의 끝났다며 텔레그램 대화와 원격제어 앱을 지우라고 해서 지웠습니다. 그게 지금도 후회가 돼요.”

경찰의 캄보디아 급습, 끊긴 연락과 방치된 피해자
2026년 1월 6일 오후, 매 시간마다 김 씨를 옥죄던 전화와 텔레그램 메시지가 돌연 멈췄다. 2025년 12월 24일 이후 14일째였다. 이날은 캄보디아 프놈펜 현지에서 한국인 사이버 스캠 조직원이 무더기로 경찰에 검거된 바로 다음 날이다.
연락이 끊기자 이상하게 느낀 김 씨는 그동안 전화가 걸려왔던 금융감독원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김 씨는 지난 2주간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은 서울경찰청으로 넘어갔어요. 제 담당 수사관님의 성함은 아는데... 아직 한 번도 연락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김서연 씨와 같은 사이버 스캠 조직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는 수백 명이다. 피해액도 267억 원에 이른다. 수사당국은 한 번씩 범죄조직 검거 소식을 화려하게 전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수사 상황을 제대로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 뜯긴 돈을 회수할 방법도 막막하다. 두니아는 후속기사에서 방치된 사이버 스캠 범죄 피해자 상황을 보도할 예정이다.
글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