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캄보디아 국경, 7만 9천 명의 ‘멈춰버린 시간’

타이-캄보디아 국경, 7만 9천 명의 ‘멈춰버린 시간’

- 2025년 5월 ‘에메랄드 삼각지대’ 총격전이 도화선... 12월 휴전에도 긴장 여전 

- F-16과 로켓포 오가는 사이, 국경의 삶은 초토화 

- 타이 돈으로 지은 집이 타이 포탄에 무너져... "권력 다툼에 등 터진 건 우리"

지도 위 1mm의 선을 지키기 위해 쏘아올린 포탄은 국경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2025년 시작한 타이와 캄보디아 국경 분쟁은 해를 넘겨 2026년 2월 현재 소강상태다. 하지만 7만 9천 명에 달하는 피란민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무너진 일상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아시아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 '두니아'가 그 현장을 찾았다.

‘지도’ 때문에 시작돼 ‘자존심’으로 번진 전쟁

이번 사태의 뿌리는 깊다.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제작된 지도와 실제 지형의 불일치로 인한 국경 소유권 분쟁은 양국 사이에 오랜 뇌관이었다. 그 뇌관이 터진 것은 지난 2025년 5월 28일, 타이·캄보디아·라오스 접경지대인 ‘에메랄드 삼각지대’에서 발생한 총격전이었다.

▲캄보디아 반테만체이주 국경 인근에서 타이군의 포탄을 맞고 폭파된 자동차.(출처: 이슬기)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하면서 시작된 충돌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7월 24일에는 ‘프라삿 따 므언 톰’ 사원 인근에서 캄보디아 BM-21 다연장 로켓포와 타이 F-16 전투기가 맞붙었다. 여기에 타이 패통탄 친나왓 총리와 캄보디아 훈 센 전 총리 간 설전까지 더해지며 외교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타이 군은 표면적으로 국경 지역의 ‘스캠 범죄 소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영토 분쟁과 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반테만체이주 국경 마을 주택. 타이군의 포격으로 집이 완전히 파괴됐다.(출처: 이슬기)

“스캠 소탕한다며 민가 폭격”... 초토화된 국경 도시

타이 군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집중 타격한 곳은 캄보디아 우다멘체이주 국경 도시 오스맛(O Smach)이다. 이곳 카지노 단지는 타이 공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였다.

▲캄보디아 우다멘체이주 오스맛 마을에서 태어난 지 15일 만에 타이군의 공격을 피해 가족과 피란길에 오른 아기 레스마욧담.(출처: 이슬기)

오스맛의 카지노 딜러였던 종부파 씨(25)는 생후 15일 된 아들을 안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는 “타이 전투기가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린 직후, 옷 몇 벌만 챙겨 오토바이 트레일러에 몸을 실었다”고 회상했다. 산후조리도 못한 채 낯선 사원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그녀는 “권력 때문인지 영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죄 없는 우리 아기가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타이에서 번 돈으로 지은 집, 타이 군이 부쉈다

전쟁의 모순은 국경 마을의 무너진 집터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반테이만체주에 사는 키앤 스렁(31)은 타이 사탕수수 농장과 감자 공장에서 수년간 일해 모은 돈 2만 달러로 고향에 집을 지었다. 가족의 꿈이 담긴 그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일자리를 준 타이 군대가 쏜 150mm 포탄에 파괴됐다.

▲캄보디아 반테만체이주 국경 마을 주민 키앤 스렁. 국경을 넘어가 타이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해 번 돈으로 지은 집이 타이군 포격으로 폭파됐다.(출처: 이슬기)

그는 “도로를 끊으려고 쏜 포탄이라는데 왜 내 집에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며, “타이에서 번 돈으로 지은 집을 타이 군대가 부숴버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깨진 평화, 돌아오지 않는 봄

국경 너머 타이 시사켓주 칸타랄락 상황도 다르지 않다. 주민 펜스리 씨(52)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 20일 넘게 피란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사이 애지중지 키우던 고무나무와 두리안 나무는 말라 죽거나 시들었다. 펜스리 씨는 “정부는 군대를 밀어붙여 이기기만 원할 뿐, 우리 같은 사람의 피해에는 관심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타이 동북부 시사켓 주 칸타랄락에 거주하는 펜스리. 지난해 12월 캄보디아-타이군 교전으로 3주간 집을 비운 동안 수년간 키운 두리안 나무들이 고사하는 피해를 입었다.(출처: 이슬기)

지난 2025년 12월 27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말레이시아의 중재로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 하지만 국경에는 여전히 긴장이 감돈다. 타이 군은 국경을 따라 컨테이너 장벽을 설치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UN과 아세안이 감시에 나섰지만, 영토 문제를 둘러싼 양국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캄보디아 씨엠립주 크란라구 삼포브론 사원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국경 마을 오스맛 주민.(출처: 이슬기)

한 피란민은 “다음 정부가 평화를 가져오길 바라지만, 그것은 암흑 같은 우주에서 작은 별빛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선거에서 승리한 태국의 아누틴 총리는 국경 장벽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현재 태국 당국은 분쟁 지역에 가시철망과 컨테이너를 동원한 물리적 장벽을 설치하며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6년 봄, 국경의 포성은 잠시 멈췄지만 7만 9천 명의 유랑민에게 ‘진정한 평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타이군이 캄보디아 영토 내인 반테만체이주 프레이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와 철조망. (출처: Nehru Ski)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