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너머] 2026 타이 총선: 미디어는 어떻게 '안보'를 팔았나

[두니아 너머] 2026 타이 총선: 미디어는 어떻게 '안보'를 팔았나

2026년 2월 8일 치러진 타이 총선은 단순한 정권 재편이 아니라, 정치가 어떤 정서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선거였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개혁 성향의 인민당(People’s Party)이 선두를 달리던 구도는 무너졌고, 극우·친군부 성향의 품자이타이당(Bhumjaithai)이 제1당으로 부상했다. 선거 운동과 정책 경쟁만으로는 이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결정적 변수는 정책이 아니라 ‘정서의 이동’, 그중에서도 2025년 타이-캄보디아 국경분쟁을 둘러싼  민족주의의 재부상이었다.

이 민족주의는 자연발생적이지 않았다. 선거를 앞둔 수개월간 타이–캄보디아 국경 긴장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타이의 미디어 환경은 분쟁을 외교적·역사적 맥락이 아닌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안보 위기’로 재구성했다. 이같은 여론 환경은 전통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정치학자 킨 피아(Kin Phea)는 두니아와의 인터뷰에서 “타이에서는 내러티브 프레이밍이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최근 온라인 행위자들이 캄보디아를 상대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을 벌이며 디지털 압박을 통해 국내 정치적 입장을 좌우하고 외교적 유연성을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타이 정치 불안정 국면과 캄보디아 국경 긴장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타이 내부 정치가 불안정해질 때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국내 정치적 압력이 때로는 국경 분쟁을 통해 외부로 전가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석은 국경 분쟁이 단순한 양국 간 충돌이 아니라,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소비되는 정치 자원으로 기능해왔음을 보여준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2025년 타이-캄보디아 국경 분쟁을 두고 “국경 충돌이 타이 내 민족주의와 친군부 정서를 재점화했고, 이는 선거에서 보수 진영에 결정적인 유리함을 안겼다”고 분석했다. 특히 2025년 12월 타이 전투기가 캄보디아 시엠립 주 깊숙한 지역을 공습한 이후에도, 정치권과 언론에서 안보 프레임이 반복적으로 호출됐다. 

이 과정에서 타이 주류 언론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타이 언론인 수팔락 군자나쿤디는 두니아와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미디어를 통해 분위기와 서사를 설정했다. 그들은 소셜미디어와 그 계열사 등을 동원해 타이 전역에 민족주의 정서와 반(反)캄보디아 감정을 부추겼다.”며 “영문 매체인 '더 네이션(The Nation)'이나 '방콕 포스트(Bangkok Post)'를 봐도 모든 것을 군사적 관점이나 전술적 전쟁 관점에서 보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타이의 대표적 영문 일간지인 방콕포스트는 국경 충돌을 다루며 군과 정부의 발표를 중심으로 사실을 정리했다. 타이군의 공습에 대해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 ‘필요한 대응’이라는 표현이 반복됐고, 분쟁은 정치외교적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기술적으로 관리되는 안보 사안으로 프레이밍됐다. 겉보기에는 중립적 보도였지만, 군의 무력 행동을 논쟁의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분리시키는 효과를 만들었다.

속보 중심 매체의 역할도 컸다. 인터넷 언론 카오소드(Khaosod)와 그 영문판은 부상자 수, 주민 대피, 병력 이동, 국경 봉쇄를 실시간으로 전했다. 이러한 보도는 현장의 긴박함을 생생히 전달했지만, 동시에 독자들을 지속적인 위기 감정 속에 묶어두는 효과를 만들었다. 이 시점에 왜 충돌이 격화됐는지, 국경 확전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문제를 타이 언론 내부에서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카오소드 영문판은 2025년 말 실린 칼럼 〈#TeamThailand 국면에서 태국 언론이 군의 대변인이 되다(When Most Thai Media Turn into Military Mouthpieces under #TeamThailand)〉에서 다수 타이 언론이 국경 분쟁 국면에서 군의 브리핑을 거의 비판 없이 받아쓰는 ‘확성기’ 역할을 했다고 자성했다. 이 글은 애국 해시태그와 전황 보도가 결합되며, 언론이 스스로 감시자의 위치를 내려놓았다고 지적했다.

타이어 대중지 타이라트(Thai Rath) 등은 이 흐름에 감정의 언어를 더했다. ‘캄보디아의 도발’, ‘주권 수호’, ‘단호한 대응’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며 국경 분쟁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대결로 재구성됐다. 군은 ‘국토의 수호자’로 신화화됐고, 신중함이나 대화, 평화를 언급하는 정치 세력은 암묵적으로 나약하거나 비애국적인 존재로 밀려났다. 카오소드 영문판의 또 다른 기획 기사 〈타이-캄보디아 분쟁 속에서 확산되는 극단적 민족주의(Thais Struggle with Ultra-Nationalism as Thai-Cambodian Conflict Continues)〉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타이 사회 전반에 과도한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내부적 우려를 전했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존재했다. 독립 온라인 매체 프라차타이(Prachatai)는 확전의 책임 소재, 민간인 피해 가능성, 그리고 양국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민족주의 광풍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차례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주류 방송과 대형 포털, 알고리즘 중심의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다. 비판은 있었지만, 선거 국면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다.

이처럼 서로 다른 보도 방식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했다.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은 군의 권위를 정상화했고, 속보는 위기 감정을 증폭했으며, 대중지는 민족주의를 도덕적 가치로 고정시켰다. 그 결과 극우적 민족주의는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선동하지 않아도 선거 국면의 지배적 정서로 자리 잡았다. 이런 환경은 군 개혁을 주장해온 인민당을 방어적인 위치로 몰아넣었고, 보수·친군부 세력에는 결정적인 선거 자산이 됐다.

이번 총선은 검열이나 노골적 선전으로 조작된 선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반복된 보도 톤과 프레임이 유권자의 감정 지형을 서서히 이동시킨 선거였다. 국경의 총성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뉴스가 축적한 위기의식과 안보 제일주의였다. 2026년 타이 총선은 정책 경쟁과 개혁 의제 대결보다, 위기와 애국을 둘러싼 정서가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압도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