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너머] 2026년 타이 총선과 스마트한 권위주의의 대두
이정우(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타이정치 전공)
스마트 권위주의의 등장
타이를 떠올릴 때 관광지라는 이미지 다음으로 정치적 맥락에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쿠데타이다. 1932년 이후, 성공한 쿠데타로만 12번이 자행되었으니 산술적으로 7.8년에 1번 벌어진 것이다. 타이의 정치사를 조금만 공부한다면 쿠데타의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왕실과 군부의 결탁이 주된 원인이었다. 국왕에게 군의 통수권이 있으며 내각은 군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이를 일컬어 미국의 타이 학자 폴 채임버스(Paul Chambers)는 “평행선 국가(parallel state)”라고 지칭했다. 한 쪽에는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군부의 동맹이, 다른 한 쪽에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2006년과 2014년의 쿠데타는 모두 타이 정치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탁신 친나왓과 그 가문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쿠데타는 탁신 가문을 정치에서 내몰지 못했고 오히려 2007년 군정 아래에서 실시한 선거에서도 당시 탁신 계열 정당인 팔랑쁘라차촌당이 승리하였고, 2011년 총선에서도 같은 탁신 계열 정당인 프어타이당이 승리하였다. 2014년 쿠데타 이후에는 긴 기간의 조율에 들어갔다. 두 번의 쿠데타에도 선거를 이길 수 없었던 군부는 시간과 “스마트한”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전략은 쿠데타 대신 의회 내에서의 정치인 것처럼 교묘하게 제1당이 총리 지명에게 실패하게 유도하거나 헌법재판소를 동원하여 정당을 해산, 혹은 정치인에 대한 정치 활동 금지 처분을 하는 것이었다. 쿠데타와 같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피하면서 최대한 제도를 이용하여 집권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좋은 전략이었다. 교묘하고 정교한 전략으로 스마트하게 작동하는 권위주의의 모습이 처음 나타난 것이 2019년 총선이었다. 그렇게 군부 출신의 총리가 탄생했었다.
2023년 총선은 스마트한 권위주의가 처음으로 작동하여 제1당을 집권하지 못하게 한 사례였다. 개혁 정당으로 2019년에 등장한 오렌지 정당(아나콧마이당)은 2020년 군부에 의해 헌법재판소의 명령으로 해산되었다. 이후, 당명을 까우끌라이당으로 바꾸어 2023년 총선에 나섰는데 당대표였던 피타 림짜른랏은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오렌지 정당을 제1당의 반열에 올렸다. 당시 까우끌라이당은 의회에서 151석을 얻었음에도 다른 정당과 총리 선출을 위한 충분한 의석 수 확보를 할 수 없었다. 이는 까우끌라이당이 이른바 왕실모독죄인 형법 제112조에 대한 개정을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프어타이당과 일부 정당을 제외하고 보수주의 정당은 모두 이를 왕실과 타이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보았으며 까우끌라이당과 연합하지 않았다. 또한, 군부에 의해 지목된 상원 역시 까우끌라이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결국 총리 선출은 제2당인 프어타이당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제1당의 선출은 좌절되었다. 이후, 까우끌라이당은 형법 112조에 대한 개정 공약을 빌미로 타이 안보에 위해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2024년 해산되고 만다. 쿠데타가 아닌 제도를 통해서 야당을 해산하고 집권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선거에서 이길 정교하고 스마트한 권위주의의 시작이었다.
보수주의 정당의 총선 전략 (1): 타이-캄보디아 무력 충돌과 민족주의의 도구화
군부는 평행선 국가의 모습을 이용해 캄보디아와의 무력 충돌을 통하여 정권을 압박하였다. 패텅탄 친나왓은 캄보디아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훈센 캄보디아 상원 의장과도 통화하였다. 그러나 통화에서 훈센을 “삼촌”으로 칭하면서 타이군 사령관을 적대시하는 통화 내용이 공개되며 파장이 일었다. 당시 내각에 참여하던 보수 정당인 품짜이타이당은 연정에서 즉각 탈퇴하며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선회하였다. 이후, 패텅탄 친나왓 당시 총리는 헌법 윤리를 위반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었다. 품짜이타이당은 이후, 제3당으로서 연정을 구성하며 4개월 뒤에 내각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 든 오렌지당은 품짜이타이당 총리 후보인 아누틴 찬위라꾼에게 투표하며 보수 내각이 탄생했다.
두니아 이슬기 기자의 관련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국경 문제는 오래된 문제이지만 필요시 보수 엘리트가 동원하는 정치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를 통해 군은 국가 안보 위협을 강조하고 민간 정부에게 강경 대응을 압박하며 국경 통제 권한과 주변 지역에 대한 계엄령 선포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위기 관리의 주도권이 군부로 이동하며 역할의 확대로 이어졌다. 국제정치이론에도 관심전환이론(Diversionary Theory of War)이라는 것이 있다. 국내 정치적 불안정에 직면한 지도자가 대중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내부 결집을 위해 의도적으로 분쟁이나 위기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외부의 충돌은 선거 전략을 위하여 활용된 것이다. 2026년 2월 8일의 총선은 민족주의를 활용한 보수주의 정당의 승리였다. 캄보디아 접경지대의 지역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탁신계의 프어타이당이 강세를 보였던 동북부 이싼, 북부 지역에서도 품짜이타이당과 끌라탐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보수 정당의 총선 전략 (2): 지역에 존재하는 후견주의(clientelism) 네트워크
이번 총선에서 대두된 주요 화제 중 하나는 부패였다. 타이에서는 부패한 정치 영역을 회색에 비유한다. 회색 정치인을 퇴출하고 자신의 정당은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보수 정당을 비롯하여 지역 정치에서는 이러한 부패를 상징하는 후견주의 네트워크가 만연했다. 품짜이타이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경로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방 정치인과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반 권력을 만든 것이었다. 아누틴 찬위라꾼은 지난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대규모의 선심을 지방 정치인에게 제공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타이 정치학자인 나폰 짜뚜씨피탁 박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품짜이타이당이 이러한 전통적인 선심정치, 후견주의에 기반을 두고 보수 유권자를 끌어들여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민족주의와 함께 지역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품짜이타이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다른 정당을 압도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후견주의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것에는 보수 정당과 군부가 조장하는 국경 분쟁에 지친 유권자의 침묵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두니아 이슬기 기자는 타이-캄보디아 국경에 대한 취재에서 분쟁에 휘말려 이재민이 된 당사자를 만났다. 그는 어느 정당도 어떻게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지 않았고 실망했으며 총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느 정당도 정확히 어떻게 분쟁을 종식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러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총선이었다면 보수 정당의 승리에 일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마트한 권위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
위의 전략을 바탕으로 품짜이타이당은 193석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개혁 정당인 쁘라차촌당은 118석, 탁신 계열의 프어타이당은 74석, 보수주의 끌라탐당은 58석, 타이민주당(쁘라차티빳당)은 25석을 얻으며 각각 의회에서 2, 3, 4, 5위를 점유했다. 이렇게 승리를 차지한 보수 정당이지만 결과가 스마트 권위주의에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보수주의 정당과 스마트 권위주의에 앞으로 위협될 수 있는 요인은 두 가지로 관찰할 수 있다.
첫째, 타이에서 유권자 1인은 두 표를 행사한다. 한 표는 지역구 의원 선거에, 나머지 한 표는 비례대표제를 위해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는 지역구 의원 선거에서 품짜이타이당이 대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북부와 동북부에서 모두 분할 투표가 관찰되었다. 북부에서는 지역구에 품짜이타이당, 비례대표 투표에 쁘라차촌당 분할이, 동북부에서는 지역구 품짜이타이당, 비례대표 투표 프어타이당 분할이 나타났다. 민족주의를 활용한 선거 전략이 일부 작용했지만 이것도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수주의 정당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보수주의 정당이 지속적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지 않거나 경제 발전을 포함한 국가 발전을 위한 사회 정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의 패배는 자명할 것이다. 또한, 탁신 계열의 정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북부와 동북부의 농민과 소득 수준이 낮은 유권자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품짜이타이당은 민족주의를 활용한 “스마트한” 권위주의 이외에는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방콕의 모든 선거구에서 쁘라차촌당이 석권하였다. 방콕의 중산층은 과거 2006년 쿠데타 정국 당시에는 친왕실의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탁신은 북부와 동북부를 중심으로 지지를 받았으니 방콕의 유권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이 방콕의 중산층으로 하여금 쿠데타를 반기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왕실을 지지하는 배경이었던 방콕의 중산층이 지역구와 비례대표제 투표 모두에서 쁘라차촌당을 1위로 선택하였다. 사실상 민족주의와 지역의 후견주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전략이 아니었다면 품짜이타이당을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사실상 없었다는 의미이다. 북부, 동북부에서는 분할 투표가 존재하고 방콕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쁘라차촌당이 거의 모든 의석을 차지하면서 확실하게 품짜이타이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층이 희박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쿠데타가 아닌 다른 요인을 활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산 넘으니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스마트 권위주의가 어떻게 더 진화할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스마트 권위주의를 대하는 야당의 과제
이번 선거 이전에 쁘라차촌당도 범실을 한 적이 있다. 바로 패텅탄 총리의 파면 이후, 보수주의 정권이 등장하게 한 타협이었다. 아누틴 총리가 지명될 수 있게끔 지지하였고 조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지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아누틴 총리를 지지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며 사과한다는 당 지도부의 입장 표명이 있었고 선거 이후에는 품짜이타이당과 연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물론, 보수 정당과의 타협이 이번 선거에서는 크게 표심에 작용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방콕의 중산층은 탁신 계열을 지지할 수 없으니 그래도 대안으로 쁘라차촌당을 선택하였으며, 북부의 비례대표제 투표에서도 쁘라차촌당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 정당인 쁘라차촌당 역시 이번 선거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정책을 통해 유권자에게 다가갈 방법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첫째, 방콕의 중산층과 젊은 세대는 민족주의, 후견주의로부터 영향이 자유롭다. 그들에게 공공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급할 것인지, 공공 정책을 통한 타이 사회의 문제점 해결을 고민하여야 한다. 특히 방콕의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와 공공교통수단의 질적 제고, 자연 재해에 대응하는 정부의 역량 제고 등이 있다. 둘째, 젊은 세대의 개혁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까우끌라이당이 형법 112조 개정을 빌미로 해산되고 쁘라차촌당으로 재건되면서 정치 개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쁘라차촌당의 정체성에 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타이 정치학자 아카닛 허랏따나쿤 박사는 쁘라차촌당이 지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더 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엘리트 정당에 머무르면서 방콕 이외에는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기회에서 멀어진다고 아카닛 박사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탁신 계열의 프어타이당은 2023년 총선에서 제2당이 되었으나 이번 2026년 총선에서는 3위로 밀려났다. 의석 수가 67석이나 줄어들며 과거 타이의 양극화의 중심에서 보수주의 라이벌의 자리를 쁘라차촌당에게 넘겼다. 물론 프어타이당의 직접적인 패인은 패텅탄 전 총리의 통화와 그로 인한 민족주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프어타이당이 여전히 동북부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크고 분할 투표가 관찰되는 만큼, 프어타이당이 어떤 정책을 주장하고 동북부 유권자에게 어필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미래의 선거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 쁘라차촌당과 프어타이당 모두 스마트하게 진화한 권위주의에 맞서서 민족주의와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였을 때에 어떤 선거 전략에 임해야 하며 어떤 공약을 제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숙제로 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