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니아 북클럽] 빈센트 베빈스 저 『자카르타가 온다』 서평

[두니아 북클럽] 빈센트 베빈스 저 『자카르타가 온다』 서평

강혜련 (프리랜서 기자)

작년 가을, 인도네시아에 처음 갔다. 발리 덴파사르의 해안가 리조트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일 관련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빈센트 베빈스의 <자카르타가 온다>에서 바로 그 바닷가가 나왔다. 1965년 이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인도네시아 반공 움직임에서 수년간 1백만 명이 수하르토 정권에 의해 학살되었고, 발리에서만 8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죽었다. 내가 있었던 리조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절멸 위에 지어진 관광객용 “발리식 미소”. 이런 망각의 벽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외국인 여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와, 여기 참 예쁘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대다수는 ‘냉전’을 너무나 당연하게도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기억할 것이다.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으며, 미국의 동맹인 대한민국도 ‘좋은 나라’의 편에 섰다. 비록 북한이라는 공산주의 체제가 남아 있지만, 그리고 냉전으로 인해 남한도 독재 정권의 오랜 탄압을 겪었지만, 냉전은 과거의 잔해로 여겨진다. 미국이 승리한 세계에서 결국 어떤 체제가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21세기 우리 사회는 분명한 정답을 제시한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이 분명한 정답에 균열을 일으킨다.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반공주의로 인해 정치적 다양성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를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중심적으로 탐구한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인도네시아는 잔혹한 투쟁을 거쳐 네덜란드에게서 자유를 획득했다. 1950년대 내내 반제국주의 정책을 선두로 한 수카르노 정권은 “다양성”이라는 깃발로 1,300개가 넘는 다양한 민족과 7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인도네시아를 통일하고자 했다. “제3세계” 국가들을 모아 새로운 미래 권력 체제에 대한 상상을 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공산당(Partai Komunis Indonesia, 이하 PKI)은 합법적인 정당이자 거대 야권 세력이었다. 약 1억 명이던 인도네시아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 어떤 방식으로든 PKI와 연결되어 있었고, 소련과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공산당이었다.

서방 국가들은 이러한 반제국주의 움직임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PKI를 큰 위협으로 인지했고, 1950년대부터 수카르노 정권에 대해 외교적·경제적 압박과 비밀공작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1965년, 인과관계가 지금도 불분명한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수하르토 장군이 군부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미국은 이 새로운 반공 군부를 외교적·정보적으로 지원했다. 이렇게 대학살이 시작되었고, PKI는 절멸됐다.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실종되고 잔인한 죽임을 당했다.

인도네시아의 석유 및 주요 천연자원 사업의 국유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수카르노 정권과 달리, 수하르토 정권은 미국 친화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다. 1965년 대학살 이후 “미국은 즉시 경제의 수문을 열었다. 극도로 죄이던 경제 상황이 느슨해지고, 미국 기업들은 이윤을 위한 기회를 찾아 나섰다. 권력이 넘어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미국 광산 기업 프리포트의 대리인들이 서뉴기니 정글에 가서 다양한 광물이 매장된 광산을 찾아냈다. 지금은 에르츠베르흐라고 불리는 이 광산은 전 세계 최대의 금광이다.”

‘자카르타 메소드(방식)’는 이렇게 탄생했다. 인도네시아 이전에도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개입한 사례는 적지 않았지만, 저자 베빈스는 미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반공 학살을 ‘성공 사례’로 인식했고, 이와 유사한 접근 방식을 전 세계에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중남미에 주목하며,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추구했던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미국의 개입과 국내 반공 세력의 공세 속에서 1973년 붕괴했는데, 그 과정과 결과에 인도네시아 모델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의 벽에는 반공 세력이 남긴 ‘Operación Jakarta(작전 자카르타)’라는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언론사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민주주의와 자유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가 1966년 게재한 칼럼에 의하면 수하르토의 정권 교체는 “아시아에 비치는 한 줄기 빛”과도 같다고 했다. 학살은 이렇게 지워졌다.

나는 2014년부터 서구권 외신을 통해 한반도 관련 보도를 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해왔다. 개인적으로 ‘언론의 객관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꽤 비판적인 자세를 고수해왔고, 모두가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매체들도 불완전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걸 인지해왔다. 나름 깨어 있다고 자만했는데, 이 책을 통해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역사’라는 내러티브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쓰여지는지, 무엇이 지워지고 간과되는지, 인도네시아에 관한 나의 무지만큼 냉전에 관한 무지도 깊다는 걸 깨달았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한국의 사례에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 중남미의 반공 움직임이 인도네시아 학살과 연결점이 더 명확해서일 수도 있고, 대륙적으로 퍼진 중남미의 사례가 지역적으로 국한된 남한의 사례보다 더 흥미롭다고 판단해서일 수도 있다. 저자의 의도가 어찌 됐건, 한국도 전 세계 반공 역사에서 큰 줄기를 차지한다. 책의 부록에 나온 “반공 절멸 프로그램, 1945-2000년” 지도만 봐도 한국의 희생자 수는 상위권이다. 1위 인도네시아(1백만), 2위 동티모르(30만), 3위 과테말라(20만), 4위 한국(10~20만).

하지만 희생자의 순위를 따지지 않더라도, 인도네시아와 중남미에서 일어난 절멸의 패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낯익다. 1947년부터 시작된 제주 4·3 사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그 외에 수많은 사건들… 공산주의는 성공적으로 악마화되었고,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에 가장 적절한 명분이 되었다. 과거의 패턴이 아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며 똑같은 반공 논리를 사용하였다.

오늘날 공산당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당의 형태이다. 베빈스는 미국의 전 세계적 개입으로 인해 많은 국가들의 정치적 다양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반제국주의 실험을 도모했고, 새로운 세계적 권력의 집합체가 되기를 상상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이 있었다. 그들이 성공했다면 오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베빈스는 그들에게 시도할 자유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오늘날 휘날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깃발에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피가 묻혀 있다. 이승만을 거쳐 박정희와 전두환까지, 수십 년간 지속된 우리의 독재 정권도 미국의 기대에 맞춰 반공 운동을 지속했다. 미국의 특혜를 받기 위해, 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북한이라는 실존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대한민국 역사에서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에게서 엄청난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성취를 이뤄냈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위상이 모두 ‘미국 친화적인 독재 정권의 반공 정책’ 때문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건 너무 단순한 시각이다. 하지만 한국인인 내가 오늘날 누리는 민주주의적 자유와 경제적 혜택들이 이러한 폭력의 역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미국이 승리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은 역사적 희생과 죽음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우울하고 불안했다. 좋은 책이고, 당연히 추천한다. 하지만 나에게 끝까지 풀리지 않은 질문들은 폭력과 잔인함과 무고한 희생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라는 개인은 생존하기 위해 폭력을 써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베빈스가 보여주는 세계는 내 개인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흔드는 잔혹한 곳이다. 이러한 세계 안에서 폭력이란 불가피한 것일까? 다시 말해, 만약 인도네시아의 PKI가 무장단체였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맞서 싸웠다면? 칠레의 아옌데가 더 잔인하게 반대파를 진압했다면, 그가 원했던 사회민주주의적 실험들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베빈스도 고민을 했던 것 같다. “20세기 최대의 패자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너무 진심으로 믿은 이들, 민주주의를 너무 많이 믿은 이들, 미국이 정말로 지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지지한다고 말한 것, 곧 부자 나라들의 행동보다 말을 믿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은 전멸했다.”

나라는 개인은 이 피 묻은 역사에서 어떤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할까? 분명히 나는 이 역사의 일부분이고, 의도치 않았지만, 내가 저지르지 않았지만, 이 폭력의 역사에서 수혜를 받았다. 스스로를 가해자로 보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수혜를 받았으니 공부는 열심히 해야겠다. 대한민국 시민으로 21세기에 살아가며, 한반도 안에만 국한된 공부가 아닌, 인도네시아 역사도 중남미 역사도 우리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하고 추악하고 이상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더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살 수 있을지 공부를 해야겠다. 아마 <자카르타가 온다>의 저자 빈센트 베빈스도 책을 통해 그러한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강혜련: 서울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프리랜서 기자. 퓰리처상 수상자 USG Audio가 제작한 8부작 팟캐스트 "Mission K-pop"의 진행자이자 작가이며, 현재 제작 중인 장편 다큐멘터리 "나로의 우주 탐험"의 감독. www.haeryunk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