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여성에겐 꿈이 있다, 세상이 그들을 짓밟아도
[편집자 주] 지난 7월,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보고르(Bogor)에서 트랜스여성 공동체를 공격하는 영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한 달, 인도네시아 트랜스여성을 향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들은 계속 버텨내고 있다. 이들을 향한 폭력의 배경에는 국가가 있다. 2025년 대통령령 제111호는 LGBTQ 문화 확산을 ‘비군사적 국가 위협’으로 규정했고, 2006~2018년에만 반LGBTQ 규정이 최소 45개 만들어졌다. 보고르시 조례는 와리아(Waria,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여기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행동을 지닌 사람들)를 '성적 일탈'로 분류했으며,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유사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 침묵 속에서도 그들은 소박한 꿈을 꾼다. 인도네시아 독립언론 프로젝트 물타툴리(Project Multatuli)의 취재기사를 재발행한다.
By 리오 투아시칼 (Rio Tuasikal)
보고르 – 어느 오후, 데시(Desi, 34)는 평소보다 오래 화장을 했다. 세 명의 친구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방에서 단장하는 데 푹 빠져 있었다. 카메라에 찍힐 것이기 때문에 최선으로 단장해야 한다고 느꼈다.

"빨리 좀 해, 아까부터 화장만 하고 있네." 이르마(Irma, 29)가 장난스러운 투로 말했다.
약 가로세로 3x3m 크기의 작은 임대방에서 데시의 친구들은 집주인인 데시를 끊임없이 놀렸고, 데시는 마침내 바닥까지 늘어지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분위기는 더욱 활기차졌다.
"멋진데." 펠리사(Felisa, 34)가 맞장구를 쳤다.
한쪽에서 니타(Nita, 37)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장면은 한 달 만에 벌어진 즐겁고 새로운 변화다. 보고르에서 트랜스여성 공격 사건이 잇따른 후, 그들은 자취방에 모여 구호품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외부 활동을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평소처럼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보고르의 트랜스 공동체에 대한 일련의 공격과 괴롭힘으로 인해 길가에서 호객 행위를 하거나 앱을 통해 손님을 찾는 것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20년간 국가로부터 적대시당하다
보고르의 트랜스여성 공동체 공격 영상은 7월 말에야 바이럴이 되었지만, 이런 일상은 사실 올해 3월 말부터 있어왔다.
보고르의 트랜스여성 공동체를 지원하는 '뻘랑이 누산타라(Pelangi Nusantara)'는 '보티 헌터(Boti Hunter)'에 의한 공격 사건을 최소 10건 기록했다. 이들은 45명의 트랜스여성을 집단 폭행하고 돌 등을 던졌으며, 일부는 멍이 들거나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었다.
'보티 헌터'의 활동은 2025~2029년 기간의 국가방위 일반정책에 관한 2025년 대통령령 제111호가 제정된 후 청신호를 받은 듯하다. 이 법령은 'LGBTQ 문화의 확산'을 사회문화적 차원의 비군사적 국가 위협 중 하나로 포함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생긴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LGBTQ 공동체를 표적으로 삼은 수많은 규제 목록이 추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성소수자 인권 단체 '아루스 뻘랑이(Arus Pelangi)'에 따르면, 2006~2018년 사이에만 LGBTQ를 표적으로 한 규정이 최소 45개에 달했다. 그중 하나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관한 2018년 파리아만(Pariaman)시 지방조례(Perda) 제10호이다. 이 조례는 모든 사람이 "와리아(waria, 여성을 뜻하는 와니타와 남성을 뜻하는 프리아를 합성해 트랜스여성을 가리키는 인도네시아어)처럼 행동하는 것을 금지"(제24조)하고, "동성과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제25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고르시 자체에서도 성적 일탈 행동 예방 및 대응(P4S)에 관한 2021년 지방조례 제10호(제6조)가 남성 동성애, 여성 동성애, 양성애, 와리아를 "성적 일탈 행동"으로 분류하여, LGBTQ 공동체를 노출증, 시신 성애, 수간과 동일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지방조례와 회람이 계속 등장했다. 공공안녕, 질서 및 주민보호에 관한 2022년 파리기 무통(Parigi Moutong)군 지방조례 제3호는 누구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동성 파트너와 함께 음란 행위를 하는" 장소에 있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제36조).
수많은 반(反) LGBTQ 규정은 성적 지향, 정체성, 행동, 성적 활동을 자주 혼동하고 뒤섞어버린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 단체와 시민사회 단체들로부터 비판받아왔다.
또, 이 규정들은 1993년부터 이미 "성적 지향 자체를 장애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보건부의 정신장애 분류 및 진단 지침(PPDGJ) III에 위배된다. 인권단체 'LBH 마샤라캇(LBH Masyarakat)'에 따르면, 이처럼 혼란스럽고 모순된 정의는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다양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규정은 계속 나오고 있다.
2025년 북술라웨시주 고론탈로(Gorontalo)군과 서수마트라주 부킹팅기(Bukittinggi)시는 반(反) LGBTQ 회람을 발령했다. 유사한 법안이 현재 북수마트라주 메단, 서부자바주 버카시, 반둥, 가룻, 칠레곤, 남술라웨시주 마카사르, 중부 술라웨시주 팔루 등에서 입법 추진 중이다.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도 국회(DPR)가 2014년 파트와(Fatwa, 이슬람 법률 견해)를 통해 LGBTQ 집단을 비난했던 인도네시아 울라마 위원회(MUI)에 "LGBTQ 형사처벌 법안" 학술 원고 작성을 요청했다.
정부 관료들은 이러한 규정이 보건과 공공질서를 위한 것이며 LGBTQ 개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법무·인권·이민·교정 조정장관 유스릴 이흐자 마헨드라(Yusril Ihza Mahendra)와 현 내무부 차관이자 전 보고르 시장인 비마 아리아(Bima Arya)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LGBTQ 개인에 대한 폭력 데이터는 그 반대 상황을 보여준다. LBH 마샤라캇과 여러 인도네시아 시민사회 단체가 2022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LGBTQ 응답자 401명 중 40.4%가 중상을 입는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고, 35.4%가 주거지 파손을 겪었으며, 43.4%가 다양한 정체성으로 인해 해고를 당했다.
한편, 성소수자 인권 단체 아루스 뻘랑이의 2006~2018년 모니터링에 따르면 최소 1,840명의 LGBTQ 개인이 혐오 공격의 피해를 입었다. 이어 2021~2023년 동안 373명의 LGBTQ 개인이 폭력과 차별을 경험했다. 여기에 2024~2025년 기간 동안 141명의 피해자가 관련된 94건의 사건이 추가되었다. 가장 많은 피해자는 주로 트랜스여성 집단에서 발생했다.
'보티 헌터' 이전과 이후

지난 20년 동안의 상황은 인도네시아 트랜스여성들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폭력의 파고는 트랜스여성 공동체의 경계심을 높였다. 생계 활동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이들 대부분은 교육 시스템과 정규 직업에서 배제되어 거리에서 버텨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보고르에서 기승을 부리는 보티 헌터 때문에 데시, 니타, 펠리사, 이르마 같은 트랜스여성들은 집에 머물며 생필품 구호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랜스여성에 대한 연쇄 공격이 일어나기 전 그들은 한 달에 최소 200만 루피아(약 17만 원)를 벌었다. 참고로 2026년 보고르시 최저임금(UMK)은 540만 루피아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수입조차 거의 바닥났다.
데시는 이제 손님들로부터 한 달에 약 100만 루피아 정도만 벌 수 있는데, 월세, 수도, 전기세만 해도 100만 루피아가 넘는다.
한편 이르마는 하루에 5만~10만 루피아를 벌 수 있었지만, 지난 한 달 동안은 수입이 거의 없었다. 길가나 온라인으로 손님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수로 뛰던 부업 일거리도 끊겼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45만 루피아의 월세를 내야 한다. 그녀는 빠듯한 생계지만 부모님에게도 돈을 보내왔다.
"큰 돈은 못 드려도 부모님이 기뻐하시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니타 역시 길거리 호객이나 미용 서비스 부업 모두에서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수입이 전무하다. 그나마 부모님의 임대주택에 함께 살고 있어 집값은 아끼고 있다.
펠리사 역시 수입을 잃었고 부업도 없다. 최근 그녀는 잡초를 뽑는 일용직으로 3만 루피아를 일당으로 받았다. 70만 루피아 상당의 월세와 전기세를 내고 가족에게 계속 돈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한 일이었다.
"중요한 건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밥을 먹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늘 배제되어 온 삶

그들 중 누구도 거리에서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깡패, 경찰, 공공질서유지대(Satpol PP)의 갈취나 단속부터 최근의 위협인 '보티 헌터'까지 다양하다. 그 외에도 밤늦게 일해야 하고 성매개 감염병 노출 위험이 있어 건강도 챙겨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트랜스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 받던 따돌림으로 인해 대다수 트랜스여성, 특히 평범한 가난한 가정 출신은 학업을 중간에 중단하게 된다. 이는 일상생활 속 낙인, 차별, 폭력으로 더욱 악화된다. 결국 많은 이들이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10명 중 사업을 하는 사람은 겨우 한두 명입니다. 나머지는 성매매, 길거리 악사, 잡일, 빨래 노동자 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뻘랑이 누산타라의 아리스도 곤잘레스(Arisdo Gonzalez)가 말했다.
"결국 그들이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길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거나, 친구 일을 돕거나, 일용직 노동자가 되는 것 외에는요."
"미용실이나 성매매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들도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의가 있습니다." 아리스도가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삶을 바꿀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꿈이 거창한 것도 아니다.
데시의 꿈: 소토(Soto) 장사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데시는 학비 문제와 괴롭힘 때문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녀는 형부를 따라 소토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요리를 좋아하게 됐다.
"아마 요리를 좋아하는 체질이었나 봐요?" 그녀가 자부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의 노점을 열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 길가에서 성매매를 하게 됐다.

얼마 전, 그녀가 손님을 기다리던 장소 맞은편에 영양충족 서비스 부서(SPPG)가 들어섰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조리사로 지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우리가 여성 같은 외모를 하고 있어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요. 삭발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음식 장사를 하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 소토든 주전부리든 상관없다.
"시골에서는 뭐든 돼요. 카사바를 갈아서 튀김을 만들거나 촘브로(combro, 카사바 튀김)를 만들어서 이동 장사를 하면 되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이르마의 꿈: 양계업자

이르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괴롭힘과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그 안 좋은 경험 때문에 진학할 의욕을 잃었다.
"다시 따돌림당할까 봐 무서웠어요. 학교에서 계속 괴롭힘을 당하니까 위축되더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보니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매매를 하게 됐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녀는 양계업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닭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삶에 함께해 왔다. 지금도 임대방에 닭 두 마리가 있다.

그녀는 보통 시골 농가에서 닭을 사서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다시 판다. "화장품 같은 걸 사는 데 보탬이 되니까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릴 필요가 없죠." 그녀가 말했다.
니타의 꿈: 야채 가게 열기

니타 역시 초등 교육 과정 동안 비슷한 경험을 했다. 경제적 요인과 제한된 일자리 선택지로 인해 그녀는 길거리 호객으로 돈을 벌었다.
그녀는 미용 서비스를 통해 부업도 찾아봤다. 보통 친구를 도와 고데기, 스트레이트 펌, 머리감기기 등을 해주지만 수입은 불규칙하다.
"그것도 일이 생기거나 전화가 올 때뿐이에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채소 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야채 장사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만, 역시나 자금과 장소 마련에 막혀 있다.
펠리사의 꿈: 한때는 이슬람 학자(Kyai)를 꿈꿨던 그녀

펠리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다. 학교에 다닐 때 그녀는 보고르 엠팡(Empang) 지역의 이슬람 기숙학교(pesantren)에 가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이슬람 학자(kyai)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하지만 알라의 뜻은 달랐던 거겠죠. 그래서 어떤 모습이든 나는 받아들이고 자신감을 가져요." 그녀가 말했다.
온통 핑크색과 헬로키티로 장식된 작은 임대방에서 그녀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슬람 캘리그래피를 걸어놓았다. 그녀는 성매매업이 자신 같은 사람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죄나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감당하면 돼요."
경찰에게 매 맞는 것부터 감옥에 수감되는 것까지, 펠리사는 모든 것을 겪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녀는 작은 사업을 꾸리는 것을 꿈꾼다. 어떤 형태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영원히 거리에서 버틸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적어도 트랜스여성(war wer wor)으로 살더라도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멸시하며 바라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이 기사는 두니아와 기사 제휴 협약을 맺은 아시아의 독립언론 연합체 Asian Dispatch 회원사인 인도네시아 독립언론 Project Multatuli에 의해 2026년 10월 12일 최초 보도되었으며, 허가를 받아 재게재합니다.
취재·글·사진 리오 투아시칼(Rio Tuasikal)
편집·기획 마와 크레스나(Mawa Kresna) & 아드리안 물리아(Adrian Mulya)
번역·편집 이슬기 (두니아 편집장, 기자) – skidolma@theduni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