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방글라데시 총선, 먼 나라의 선거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2026년 2월 12일, 방글라데시는 지난 17년간 지속된 셰이크 하시나 체제의 종식이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의 압승과 타리크 라흐만(Tarique Rahman) 신임 총리의 취임은 단순한 정치적 승리가 아니다. 이는 2024년 7월, 독재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수많은 시민의 피 위에 세워진 조건부 기회다. 멀게만 느껴지는 남아시아의 격변이지만, 2024년 기준 한국 산업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땀 흘리고 있는 3만여 명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할 때, 이들의 고국에서 벌어지는 정의와 회복의 드라마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선거가 한국 시민에게 던지는 가장 묵직한 화두는 '국가폭력의 청산과 치유'라는 난제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7월과 8월 시위 당시 하시나 정권은 경찰과 군대,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해 시위대에게 군용 소총과 산탄총을 무차별적으로 발포했다. 이 과정에서 어린아이를 포함해 약 1,4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천 명이 실명하거나 영구 장애를 입었다. 2026년의 선거는 이러한 피의 희생 위에서 치러졌다. 투표소에 선 25세 청년이 "생애 처음으로 투표다운 투표를 했으며, 비로소 진정한 시민이 된 것 같다"고 고백한 것은, 이번 선거가 억압적인 통치에 대한 심판이자 민주적 권리의 실질적 복원이었음을 증명한다. 타리크 라만 정부의 제1과제는 이 끔찍한 국가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권자들은 새 정부에 맹목적 지지가 아닌 조건부 신뢰를 보냈다. 이는 정치인을 영웅이 아닌 계약직 대리인으로 바라보는 태도이며, 한국 정치에서도 이제 막 시작된 문화다. 방글라데시 시민들은 과거의 부패와 폭력을 답습하지 말 것을 새 정부에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나지바 바셔(Naziba Basher)가 지적했듯, 이번 투표는 정치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가 아니라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덜 위험한 쪽을 선택한 계산된 결정"이었다. 시민들은 새 정부가 법치를 바로 세우고 거리와 직장의 안전을 보장하기를 요구하며,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언제든 저항할 수 있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치인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계약된 대리인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킨다.
셋째, 민주주의의 완성은 선거 자체가 아니라 포용성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선거는 절차적으로 투명하고 평화로웠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았으나, 여성 소외라는 뼈아픈 한계를 드러냈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6,280만 명이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선거로 당선된 여성 의원은 300석 중 단 7석에 불과했다. 이는 과거 선거들에 비해 급격히 퇴보한 수치다. 선거 과정에서 여성 혐오적 발언이 난무하고, 정당들이 여성 공천에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상징적인 존중이 아닌 구조적인 보호를 원하는 여성들의 외침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달성된 후에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방글라데시의 안정이 한국 경제 및 사회와 맺는 연결성이다. 새롭게 출범한 BNP 정부는 4,000만 명이 넘는 극빈층 문제와 고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경제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현재, 방글라데시 인구의 5%가 넘는 900만명이 중동 및 아시아 국가에서 장단기 이주노동자로 체류하고 있다. 한국 내 3만여 명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국의 경제 회복은 고향에 있는 가족의 생계가 달린 절박한 문제다. 이들이 한국에서 번 소득은 방글라데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외화수입원이며, 역으로 방글라데시의 정치·경제적 안정은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6년 2월, 방글라데시 시민들은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다음 선거를 치르기 위해" 투표했다.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를 딛고, 무너진 경제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려는 이들의 노력은, 민주화의 역사를 공유한 한국 시민들에게 깊은 연대와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무너질 때는 빠르지만, 복원될 때는 느리다. 우리가 이웃의 아픔과 회복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무이자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증명하는 길일 것이다.
글 이슬기 skidolma@theduni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