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의 집만 짓는다: 델리의 솟구치는 스카이라인 아래 건설노동자의 삶

평생 남의 집만 짓는다: 델리의 솟구치는 스카이라인 아래 건설노동자의 삶

By 빌랄 한두 (Bilal Handoo) 

뉴델리 – 엷은 아침 안개가 걷히기 전, 라메쉬 야다브(Ramesh Yadav)는 2.5평 크기의 양철 가옥에서 눈을 뜬다. 지붕은 주름진 금속판으로 되어 있어서 정오가 되면 가마솥처럼 뜨거워지고, 장마철에는 북처럼 빗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3월은 델리의 날씨가 아직 쾌적한 편에 속하지만, 라메쉬는 두 달만 지나면 이 가옥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6월, 그는 내부 온도가 47도까지 치솟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그나마 발전기가 작동할 때 켜지는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을 사방으로 밀어낼 뿐이다.

라메쉬는 올해 34세로, 비하르주 마두바니(Madhubani) 지구의 한 마을 출신이다. 그는 이제 인도 수도에서 주택을 지어온 지 11년째가 됐다. 그가 잠을 청하는 누추한 방과는 대조적으로, 그가 짓는 집들은 대리석 바닥, 이탈리아식 시스템 주방, 지붕 위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이 호화로운 주택들은 3,000만, 4,000만, 심지어 5,000만 루피(한화 약 수억 원)에 분양된다. 그는 등에 시멘트를 짊어지고 직원용 출입구인 뒷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고서는, 델리의 호화로운 보금자리에 발을 들여놓을 일이 없다.

그는 나무 침상에서 일어나 공동 수도꼭지에서 얼굴에 물을 끼얹은 뒤, 22층 높이의 주거용 타워가 솟아오르고 있는 건설 현장으로 50미터를 걸어간다. 아침 7시가 되면 그는 콘크리트를 섞는다. 정오가 되면 그는 일당 400루피(한화 약 6,400원)를 받는다. 이는 정부가 규정한 미숙련 건설 노동자의 최저 임금인 695루피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라메쉬는 불평하지 않는다.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내일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력 시장에는 언제나 더 적은 돈을 받고 일하려는 더 젊은 남성들이 줄을 서 있다.

라메쉬는 매달 고향에 있는 아내와 두 아이에게 3,000루피(한화 약 4만 2,000원)를 송금한다. 그러고 나면 이 거대 도시에서 그가 살아남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대략 9,000루피(한화 약 12만 6,000원)가 남는다. 하청업체가 무료 숙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는 양철 가옥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인다. 대신 공짜 주택에는 조건이 따른다.

그곳에는 개인 정보 보호나 안전, 권리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여덟 달 후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양철 가옥은 철거되고 라메쉬는 또다시 이동해야 한다. 그는 11년 동안 총 17곳의 다른 장소를 전전하며 살았다.

건설 노동자 소득의 10배에 달하는 델리 집값 

델리에는 약 80만에서 100만 명의 건설 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대부분은 비하르, 우타르프라데시, 자르칸드, 서벵골 출신의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수도의 스카이라인을 건설하지만 도시의 주거 시스템에서는 투명 인간이 된다. 이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영구적인 집을 지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가장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주거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관련기사: 평생 벌어도 내 집이 없다: 답이 안나오는 아시아 도시의 주거 방정식)

▲델리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 라메쉬는 종종 길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사진: Kamran Yousuf)

델리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드와르카(Dwarka)의 한 건설 현장에서 라메쉬를 만났다. 그가 짓고 있는 타워에는 총 96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가장 작은 평수인 침실 2개짜리 아파트의 가격은 2,500만 루피(한화 약 4억 원)에 달한다. 

라메쉬에게 이 숫자를 말해주자 그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백만'에는 0이 몇 개나 들어가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설명을 듣고 그는 침묵에 잠겼다. 그는 사정이 좋은 해에 대략 연간 12만 루피(한화 약 168만 원)를 번다. 그가 짓고 있는 건물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를 사려면, 식비를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일당을 모두 모은다 해도 230년 동안 저축해야 한다.

델리의 주택 시장은 특정 계층을 배제한 지 오래다. 인도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 한 해 동안에만 11% 상승하여 제곱피트 당 평균 8,000루피(한화 약 11만 2,000원)에 달했다. 수도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10.1에 달하는데, 이는 평균적인 주택 가격이 가구당 평균 연간 소득의 10배를 넘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이 비율이 5를 초과하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간주된다. 델리는 그 한계치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들조차 라메쉬와 같은 사람들의 현실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라메쉬에게는 주택 시장 자체가 없는 것과 같다. 주택 가격이 단순히 비싼 것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장이 그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식 임대 시장은 보증금, 구비 서류, 보증인을 요구한다. 정부 계획이 약속했던 저렴한 임대 주택 단지 건설은 대부분 서류상의 계획으로만 남아 있다.

델리 노동자들 수입의 절반을 넘는 ‘기숙사’ 비용

주거 연구원들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를 위해 현존하는 몇 안 되는 기숙사는 식사를 포함하여 한 달에 3,600루피(한화 약 5만 원)를 청구하는데, 이는 라메쉬의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다. 대안은 연구자들이 '비공식 임대 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무허가 정착지와 도시 외곽 마을의 암시장 경제에 해당한다.

서부 델리의 틸락 나가르(Tilak Nagar)에 있는 이런 식의 정착지 중 한 곳은 원래 필지 크기에서 이름을 따와 '에이티 야드(Eighty Yards)'라고 불린다. 수십 년에 걸쳐 이 필지들은 쪼개지고 위로 증축되면서, 좁은 골목과 빽빽이 들어찬 방들이 복잡하게 얽힌 미로 같은 공간이 됐다.

이곳에서 약 12제곱미터(약 3.6평) 크기의 단칸방 월세는 4,000~6,000루피(한화 약 5만 6,000~8만 4,000원) 사이다. 보통 이 방 하나에 서너 명의 노동자가 함께 살며 방세를 나누어 낸다. 부엌은 따로 없으며, 화장실 하나를 20명이 공유한다. 물은 아침에 단 두 시간만 공급되며, 전기는 공중의 전선에서 무단으로 끌어다 쓴다.

이 정착지에서 8년째 거주하고 있는 비하르 출신의 60세 노동자 비디아나트(Vidhyanath)가 자신의 방을 보여줬다. 방 안에는 선풍기 한 대, 구석에 놓인 등유 난로, 그리고 기차 침대 칸처럼 배치된 네 개의 나무 침상이 있었다. 벽면은 페인트칠도 되지 않은 날벽돌이었고, 바닥은 갈라진 콘크리트였으며, 창문을 열면 불과 3피트(약 90cm) 앞에 맞은편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비디아나트는 방세 분담금으로 1,000루피(한화 약 14,000원)를 낸다. 그는 일을 구하는 날에는 400~500루피(한화 약 5,000~7,000원)를 번다. 그의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인력 시장에서는 더 젊은 남성들이 항상 먼저 선택받는다.

비디아나트가 살고 있는 정착지는 모순적인 공간이다. 불법이지만 필수적이다. 이곳 건물들은 모든 도시 계획 기준을 위반하고 있지만, 델리의 하층 노동 계급이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주거 옵션이기도 하다. 집주인들은 대개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로, 이주민들에게서 방세를 뜯어내며 건물 유지보수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는 소규모 임대업자가 됐다. 세입자들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한다.

이 지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주민의 56%가 고향 지역 출신의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는 구직 정보, 긴급 자금 대출을 제공하며, 도시의 냉대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폭염, 홍수에 취약한 델리 노동자 정착지 

정착지 주거 환경은 해마다 특히 여름에 악화되고 있다. 2024년 델리에서는 40도를 넘나드는 장기적인 폭염이 있었다. 건설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양철 가옥과 환기가 되지 않는 방 안에서 이런 수준의 열기는 치명적인 생명의 위협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 에어컨이 나오는 아파트를 짓는 바로 그 노동자들이, 정작 자신들은 열기를 고스란히 가두는 공간으로 퇴근한다. 단열 시설도, 맞바람 통풍도 없으며, 열기를 피할 쉼터조차 없다. 기후 위기는 주거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건강을 위협하는 일상적인 현실이다.

우기에는 정반대의 문제가 발생한다. 무허가 정착지의 배수 시설은 전무하거나 이미 마비 상태다. 골목길에 물이 차오르고 1층 방 안으로 물이 역류하며 오물까지 함께 들이닥친다.

지난해 라메쉬의 양철 가옥은 세 차례 침수됐다. 은행 계좌가 없어서 침대 매트리스 밑 플라스틱 봉투에 넣어두었던 저축액 8,000루피(한화 약 11만 2,000원)를 모두 잃었다. 게다가 하청업체는 가옥 파손에 따른 손해를 그의 임금에서 공제해 버렸다.

사회 복지와 법적 보호망에서 소외된 델리 건설 노동자들의 삶

델리에서 15년 동안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일해온 노동 권리 활동가 시탈 다스(Sheetal Das)는 1996년에 제정된 '건설 및 기타 건설 노동자법(BOCW)'이 이러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은 100만 루피(한화 약 1,400만 원) 이상의 모든 건설 프로젝트에 1%의 세금을 부과하여 오직 노동자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만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스의 설명이다. "이 자금은 주택 융자, 사고 보상금, 교육 지원, 그리고 의료비 지원 등에 쓰이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델리에서 이 제도의 실행은 완전히 실패했다."

2019년 데이터에 따르면, 징수된 복지 분담금 중 단 5.9%만이 실제 노동자들을 위해 집행됐다. 나머지 자금은 정부 계좌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다른 정부 부처의 예산으로 전용됐다.

다스는 델리 건설 노동자 복지위원회가 접수한 각종 혜택 신청서가 수십만 건에 달하며, 이는 도시 전체의 추산 건설 노동자 수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수치라고 말했다. "광범위한 중복 접수, 사기, 혹은 행정적 대혼란이 있다는 뜻이다." 

라메쉬와 같은 도시 건설 노동자들은 여전히 복지 혜택 대상자로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권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법에 도입된 '자율 검증 시스템'은 감독 기능을 더욱 약화시켰다. 이제 건설 하청업체들은 현장 조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델리의 스카이라인을 세워올리는 건설노동자들 중 일부는 길에서 밤을 나기도 한다.(사진: Kamran Yousuf)

시행사들은 자율검증 실태에 대한 두니아의 취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건설 산업은 여러 단계의 하청 사슬을 통해 운영되므로, 원청 개발사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차단막을 갖게 된다. 브랜드를 앞세워 호화 아파트를 분양하는 대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들은 시공사를 고용하고, 시공사는 다시 하청업체를 고용하며, 하청업체는 또다시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구조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추락하거나 열사병으로 사망하더라도, 법적 책임은 이 다단계 하청 사슬 속에 사라진다. 브랜드 이미지는 흠집 하나 나지 않고, 빌딩 타워는 계속해서 솟아오른다.

실거주자보다 투자자를 대변하는 델리 주거 정책

도시 주거 전문가인 사힐 샤르마(Sahil Sharma) 박사는 델리의 주택 정책이 언제나 임대 주택보다는 자가 주택 소유를 우선시해 왔다고 설명했다. 샤르마 박사는 "이러한 이념적 편향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토지 가격이 결합되면서, 실거주자보다는 투자자들을 대변하는 시장이 형성됐다"고 말한다.

2020년과 2024년 사이, 인도의 부동산 가격은 연간 9.3%의 비율로 성장한 반면, 가구 소득은 겨우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격차는 매년 더 벌어지고 있다. 1천만 루피(한화 약 1억 4,000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정의되는 '서민형 주택'의 공급은 불과 2년 만에 36% 감소했다.

샤르마 박사는 현재 진행 중인 '저렴한 임대 주택 단지' 계획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계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운영 중인 기숙사는 전체 수요의 극히 일부만을 수용할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공식 임대 시장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기초적인 거주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집에 수입의 30~40%에 달하는 방세를 지불하고 있다."

고향에도 델리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노동자들의 삶

근무 교대 조가 끝난 후 라메쉬와 함께 보낸 저녁 시간은 이러한 소외가 가져온 정신적 고통을 보여준다.

기자와 라메쉬는 건설 현장 근처의 빈 시멘트 포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인도식 전통 담배인 비디(beedi)를 말아 피우며 고향 마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5년 동안 송금한 돈으로 고향에 어엿한 벽돌 집을 지었다. 방이 3개 있고, 안마당과 수동식 펌프도 갖춘 집이다. 그의 아이들은 국립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내는 채소를 재배한다. 그 집은 그의 유일한 자산이자 안전판이며, 지난 세월 델리에서 보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증거다.

그러나 고향 마을은 더 이상 그에게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끔 방문할 때면 자녀들은 그를 '삼촌'이라 부른다. 그의 아내는 그가 없는 삶에 적응해 모든 일을 스스로 꾸려나간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도 이방인이 됐지만, 그렇다고 델리에 소속되지도 못한다. 그는 이 도시의 미래를 건설하고 있지만, 정작 그 미래에는 그의 몫이 조금도 없다.

그에게 언젠가 델리에 내 집을 마련하는 날을 상상할 수 있는지 묻자, 그는 오랫동안 침묵하다 말했다. "내가 이 타워들을 지었다. 기초가 얼마나 튼튼한지,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나는 다 안다. 모든 아파트에 대리석과 화강암, 그리고 수입 자재들이 들어갈 것도 안다. 하지만 건물이 완성되고 난 후에 내가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면 보안 요원이 나를 가로막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안다. 그는 내 이름과 동·호수를 물어볼 거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챌 거다. 그러니 내가 대체 어디에 살 수 있겠는가? 하인방(servant quarters)에? 아니면 지하 주차장에? 나에게는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방 외에는 이곳에 허락된 자리가 없다."

그는 발전기가 막 돌아가기 시작해 희미한 전구 하나에 불이 켜진 자신의 양철 가옥을 가리켰다. 다른 노동자들도 채소와 빵이 담긴 플라스틱 봉투를 들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누군가는 밖에서 등유 난로에 요리를 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먼지 속에서 달(dal, 인도식 콩스프)과 양파 볶는 냄새가 뒤섞여 풍겼다. 저 멀리서는 타워 크레인들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그리며 서 있었고, 크레인의 빨간 불빛은 마치 경고 신호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델리의 초호화 타워를 건설하는 이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이 있는 방 한 칸, 깨끗한 물, 그리고 자신들이 헌신하는 이 도시에 머무를 수 있는 소박한 권리뿐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라메쉬는 끊임없이 이동할 것이다. 하나의 타워 건설이 끝나면 또 다른 타워가 시작된다. 새로운 현장, 새로운 양철 가옥, 임시 주소지. 그는 고향으로 송금하고, 타인을 위한 주택을 지으며, 일당과 월간 송금액으로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가늠한다.

올해 서른네 살인 그는 이미 17번을 이사했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해 결국 비하르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소한 17번은 더 이사를 가야 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하고 있다.

그가 남겨두고 떠날 빌딩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입주자들은 그의 이름을 알지도 못한 채 그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아파트의 가치는 상승할 것이고, 저 아래에서 땀 흘린 고된 노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 어딘가, 또 다른 양철 가옥에서, 비하르 출신의 또 다른 젊은이가 새벽이 오기 전에 일어나 얼굴을 씻고 누군가의 꿈이 깃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집'을 짓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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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평생 벌어도 내 집이 없다: 답이 안나오는 아시아 도시의 주거 방정식

Part 1. – 계약금 갚는 데만 10년, 자카르타 내 집 마련의 현실

Part 2. – 평당 2,600만원 자카르타 부촌 한복판, 중산층의 파격 주거 실험

Part 3. – 평생 남의 집만 짓는다: 델리의 솟구치는 스카이라인 아래 건설노동자의 삶


취재 빌랄 한두(Bilal Handoo)

빌랄 한두(Bilal Handoo)는 델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견 언론인이자 편집자로, 남아시아 전역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다. 그는 주요 미디어 기업에서 근무하며 뉴스룸의 주요 편집 및 멘토십 역할을 맡아왔다.

사진 캄란 유수프 (Kamran Yousuf)

번역 및 편집 이슬기 – skidolma@thedunia.org